분류 전체보기
Sonance
freenote
thinkbig
c.life
g.life
design
journey
lateadopter
discography
link
etc





Sonance | free note | thinkbig | c.life | g.life | design | lateadopter | discography | journey | etc | contact | link


푸른님의 조각



푸른님 크로니클

 

DO YOU KNOW?
http://www.pulenim.com
(the page is not found now)



이 글은 [푸른님]이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분이 아닌 그분의 이름이 걸려 있던 커뮤니티에 대한 연대기이다. 언젠가는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었고 2011년 처음 포스트로 남겼으나 시간이 꽤 오래 지난 시점에서 그때와는 여러모로 달라진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적지 않은 부분을 고쳐 적었다. 160112일자부로 한 번, 230313일자부로 다시 한 번 쓴 버전 3의 포스트이다. 앞으로 다시 업데이트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내 기억의 [푸른님의 포켓몬스터]는 크게 세 부분이다.

처음 발을 들여놓았을 당시의 [푸른님의 포켓몬스터]
2001년 대규모의 리뉴얼을 거친 [푸른님의 포켓몬 아카데미]
이후


 

1. 푸른님의 포켓몬스터

 

1999년도에 처음 인터넷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발을 들여놓았던 커뮤니티는 [푸른님의 포켓몬스터]였다. 포켓몬 2세대의 공략을 위해 찾은 이 회색 테마의 커뮤니티는 벌써 세 번째 버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있었기 때문에 이 커뮤니티가 어떻게 태동을 했고 어떻게 발전하기 시작했는지는 나로서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사실 세 번째 버전이 맞는지도 기억이 가물하긴 하다. 그냥 그렇게 기억하고 있을 뿐이다. 어쨌든 현재 Wayback Machine을 통해 확인되는 부분은 이 홈페이지에서 넷츠고에서 서비스하는 게시판을 사용했던 것 그리고 몇가지 게시물의 제목 정도일 뿐 이 당시의 게시물을 하나하나 열람할 수는 없다. (+2023년 지금은 아카이브가 더욱 소실되어 텍스트 자체를 알아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_-;;;)

푸른님의 포켓몬스터에 있던 세 가지 게시판이 기억에 남는다. 자유게시판과 소설게시판 그리고 FAQ 게시판. 흐릿한 기억이지만 그중에서 가장 사람들의 활동이 활발했던 게시판은 아마 소설게시판이었던 것 같다. 이 당시를 떠올려 보면 굳이 푸른님의 포켓몬스터뿐만 아니라 파인클릭을 포함한 포켓몬 팬페이지는 으레 소설게시판을 주축으로 돌아가고들 있었다. 지금처럼 인터넷을 통한 멀티 플레이가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대전 등이 주요 컨텐츠로 자리 잡았지만 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에는 콘솔의 한계로 유저간 대전을 위해서는 오프라인 플레이가 필수였던지라 정모라도 개최할 만큼 큰 마음을 먹어야만 했다. 때문에 그 당시 포켓몬 커뮤니티의 주요 컨텐츠는 어떻게 스토리를 파훼해 나갈까, 어느 포켓몬이 누가 누가 더 강한가 등의 인게임 공략이, 애니메이션 등에서 파생된 OST 수집 혹은 포켓몬을 소재로 한 소설 쓰기 등이 전부였다. 그중 소설이 가장 액티브하게 즐길 거리가 아니었나 싶다. 요즘 어린아이들과는 달리 그 당시 어린아이들은 상상하며 놀았으니깐. 그러다 보니 소설게시판으로 사람이 몰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비슷한 이유로 푸른님의 포켓몬스터 소설게시판은 자유게시판보다도 더 활발했다. 2000년대 초반 즈음 제로보드가 활성화된 뒤로는 지금 같은 댓글 시스템이 일반화되었지만 그 당시에는 게시판에 댓글 기능이 없었다. 그래서 누군가 소설을 써 놓으면 코멘트나 피드백이 답글로 주렁주렁 달렸다. 그러다 보니 소설게시판 내에서 소설이 순수하게 게시물 목록을 차지하는 비중이 작아졌다. 소설을 쓰는 사람+소설을 읽는 사람 위주로 글 리젠이 그나마 많으니 사람들이 자유게시판에 가질 않고 소설게시판에서 서로를 소위 작가님이라 부르며 소설과 무관한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소설게의 자게화가 진행된 것이다.

 

그렇게 왁자지껄한 소설 게시판은 물론 다른 게시판에서도 관리자인 푸른님은 좀처럼 정체를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그 당시에도 학업 때문에 대단히 바쁜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푸른님이 직접 모습을 보였던 곳은 메인 페이지의 공지사항일 뿐 숱한 게시물 사이에서 그의 모습을 본 기억은 아무도 없었다. 다만 그 공지사항이 정말 가끔이나마 갱신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푸른님의 존재를 의식할 수 있었다. 지금 와서 돌아보면 그분은 소극적인 빅브라더의 느낌, 우리 눈앞에 있지 아니하였고 실제로 영향력을 행사하여 우리의 활동 패턴을 바꾸는 일도 없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막강한 힘을 지닌 채 뒤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는 그런 존재로 느껴졌던 것 같다. 만약 그가 개인사정에 지쳐 그 막강한 영향력을 홈페이지를 폐쇄라는 방법을 통해 나타낼 수 있었을테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다. 어쨌든 그 모든 것을 떠나 사람들이 공상하고 잡담하며 놀던 그 터전을 만든 것은 다름아닌 바로 그였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많은 사람들이 크게 존재감을 느끼고 그 존재에 의미 부여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 알 수 없는 존재감만큼 푸른님은 커뮤니티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2. 푸른님의 포켓몬 아카데미

글을 다시 퇴고하는 중 찾아낸 홈페이지 공사 당시의 대문
더보기
메인페이지
자유게시판

 

학생회 게시판

 

소설게시판

게시물 수만 보아도 소설게시판의 영향력이 컸던 것이 여실히 드러난다. 아쉽게도 Wayback Machine이 이미지까지 완벽하게 보존하지 않아 그 당시의 모습을 담아낼 수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래도 흔적이라도 남이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그런 푸른님은 기존의 터전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모자라 오히려 거기서 더 나아가 그곳을 더욱 멋진 곳으로 가꾸는 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리뉴얼이라는 이름의 리브랜딩이 주된 작업이었다. 무채색의 단조로운 페이지는 [아카데미]라는 새로운 타이틀과 함께 밝고 활기찬 분위기의 사이트로 변했다. 아카데미라는 이름은 그냥 붙여놓은 것 같지만 나름 큰 그림의 일환이었다. 운영자인 푸른님 본인을 교장으로 두어 상징성을 더했다. 아카데미에 선생은 없었지만(...) 학생회라는 존재가 있었다. 부운영자를 따로 둔 건 아니었고 건의게시판 용도의 학생회 게시판이 신설된 정도였지만. 커뮤니티의 장이었던 게시판들을 카페테리아라는 이름으로 묶어 신선한 느낌을 주고자 했던 느낌도 있다. 이때가 되어서야 소설게의 자게화 문제가 해소되어 잡담은 자유게시판에, 소설은 소설게시판에 게시되었다. 동아리 게시판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사실 당시 개인이 운영하는 포켓몬 팬페이지는 포켓몬이라는 한 분야에 대해 그림이나 동영상, 소설, 게임 공략까지 모든 정보를 운영자 스스로 포괄적으로 관리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전 회색 버전의 푸른님 홈페이지도 그러하였으나 동아리 게시판은 각각의 분야를 나누어 유저가 스스로 정보를 취합하고 게시물을 올리게 함으로써 커뮤니티 이용자에 의한 컨텐츠의 선택과 집중을 의도했던 것 같다. 파인클릭등의 대형 홈페이지에서는 이미 이루어지고 있던 방식이었지만 개인 홈페이지에서 유저들을 통한 전문성을 살리려는 시도가 꽤 괜찮았다고 평가하고 싶다. 지금 생각해도 유저가 참여하고 홈페이지와 함께 성장해 나가는 컨셉은 아카데미라는 이름과 아주 찰떡이다. 끝까지 미완성이기는 하였으나 푸른님 본인의 유려한 감각 덕택에 푸른님의 포켓몬 아카데미는 당시의 포켓몬 팬페이지들과 비교해 보아도 이래저래 독보적이었다는 느낌이 있다.

 

물론 큰 그림을 그렸던 것에 비해 푸른님이 바쁜 학업 중에 시간을 쪼개 웹페이지 개발을 하고 운영을 하던 터라 그것들이 채워지는 속도는 더뎠다. 때문에 홈페이지는 항상 공사중이었다. 그런 것에 비해 접속자는 이전보다 더 몰려 꽤나 북적거렸다. 여타 커뮤니티가 그러하듯이 사람이 모이니 크고 작은 분쟁은 있었겠으나 그런 만큼 이 시기가 [푸른님의 포켓몬스터]의 전성기였노라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다. 어느 때보다도 중2돋는 소설들이 많이 올라왔고 그만큼 작가들도 일반 커뮤니티 이용자도 많았고 오에카키 게시판 추가에 Cafe24 채팅방에서 정팅(예전엔 이런 것도 있었다ㅋㅋ)까지... 정팅 중에 아이디어가 나와 구현된, 점점 산으로 가는 릴레이 소설은 그 시기의 꽃이었다. 더불어 예전에는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은 채 공지로나마 그 존재를 잠시 확인할 수 있었던 푸른님도 게시판에 한 번씩 나타나고 정팅에도 모습을 드러내는 등 커뮤니티 구성원과 좀 더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 부분은 이 홈페이지의 길고도 짧은 역사 속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발전 중 하나이다ㅋㅋ 그때 우리 모두가 각자 마음속에 품었던 완성된 아카데미의 모습은 실로 대단했다. 기획하고 기대했던 모든 것들이 완성이 되는 순간은 얼마나 벅찼을까? 과거의 기대를 되짚어 보는 것만으로도 그 당시의 설렘이 잊혀지질 않는다.

 

하지만 기획도 기대도 거기까지였다. 당시 고등학생 신분이었던 것으로 기억되는 푸른님은 바쁜 개인생활로 다시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푸른님 본인이 운영에 잘 참여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보완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학생회 게시판을 두었으나 그 학생회란 것은 이름뿐이었고 남들을 강제할만한 권한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암만 건의해도 그것을 교정해 줄 이가 없으니 학생회 게시판은 껍데기뿐이었다.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아 각자 하던 활동을 계속하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고인물화 되었고 분쟁의 빈도도 점점 늘어났다. 분쟁의 원인 제공자가 푸른님의 실친이었던 것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하지만 운영자가 없으니 커뮤니티의 자정작용은 불가능했다. 그래도 예전처럼 홈페이지가 유지만이라도 되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관리가 안 되던 홈페이지는 어느새 도메인이 만료되고 호스팅도 끊겨 접근자체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덜컥 카지노 광고 배너가 뜨던 그 페이지를 처음 본 순간은 정말 문자 그대로 나라 잃은 표정이었다. 잘 놀던 우리의 터전을 잃어버렸구나 하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제각기 꽤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 이후로는 홈페이지가 복구된 적은 없다. 입대 등 푸른님 본인의 피치 못할 사정이라도 있었는지, 아니면 홈페이지 운영을 그냥 놓아 버렸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큰 꿈을 품었던 커뮤니티는 그렇게 한순간에 사라지며 사람들의 기억 속으로 묻혔다. 혹여나 누군가가 홈페이지의 관리 전권을 위임받거나 했었더라면 홈페이지가 지속될 수 있었을까?

 

 

 

3. 이후

이후로는 많은 시간이 지났다. 나는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성인이 된 이후로도 한동안은 포켓몬 커뮤니티에 속해 있었다. 그간 그때 당시의 추억을 가지고 서로의 발자취를 쫓는 사람도 영 없지는 않았다. 과거 ピカチュウ라는 닉네임을 쓰던 분은 그 시절의 사람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닌 듯했다. 실제로 이 블로그에서 한 번, 예전 태터툴즈 블로그를 쓸 때도 한 번 컨택이 된 적 있었다. 사실 이렇게 말을 하는 나도 무료호스팅을 얻어 돌리던 2004~5년쯤 그 흩어진 사람들을 한데 모으고 싶은 마음에 홈페이지를 개설한 적이 있었다.  아쉽게도 그 홈페이지는 Wayback Machine에도 남아있질 않지만 그때당시 알게 모르게 소식을 들은 구 아카데미 회원들이 적지 않게 홈페이지를 찾았다. 어떻게 알고 왔지? 다만 역사는 반복된다고 나조차도 호스팅이 끊어져 홈페이지도 한순간 사라졌고 흩어진 사람들을 다시 모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게 되었다. 커뮤니티를 재건하고자 하는 마음까지는 없었지만 그래도 한때 정말 친하게 수다 떨면서 살던 사람들 어떻게 지내나 궁금해서 만들었던 홈페이지였는데 여러모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 걸 본다면 홈페이지 운영은 정말 의지가 가득하지 않고서는 유지하기가 정말 어려운 것 같다. 지금은 잘들 지내고 계신지 모르겠다. 다만 그때 만났던 친구 한 분과는 아직까지 드문드문 연락을 하며 지내고 있다. 참 소중한 인연이다.

 

어딘가에는 그 아카데미가 다시 살아나 다시 학생들을 모으고 있지는 않을지, 혹시 관리자였던 푸른님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나 하는 생각에 드문드문 나름대로 자료를 찾던 시기도 있었지만 아카데미는커녕 푸른님에 대한 흔적조차 찾기가 어려웠다. 아주 예전에 푸른님이 컴공 관련한 일을 하고 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자료를 찾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마저도 시간이 지나니 접근불가가 되어버렸다. 결국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는 것이 없다.

 

나도 성인이 된 지 오래되어 벌써 결혼도 했고 그때 소설 쓰고 잡담 하고 가끔은 말로 치고받고 싸우던 사람들도 다 어엿한 사회인이 되어 돈도 벌고 나처럼 짝을 만나 결혼도 하고 지낼 텐데 어디서 무얼 하는가 싶다. 가끔은 아까 말한 그 친구처럼 안부나 전하면서 살고 싶은데 그럴 방법이 없는 것이 좀 아쉽다. 다만 거의 20년(예전엔 이 부분을 10년이라 썼었는데 정말 시간이 많이 지난 것 같다)도 더 지난 시점에서 새로이 마주하게 되면 어떤 기분일까?

 

 

 

아마 추억은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름다울 것이다.

 

 

 

정말 기회가 된다면 그때의 사람들이 모두 모여 술이나 한 잔 걸치고픈 아련한 소망이 있지만.

 

 

 

 

 

 

나는

숱한 닉네임을 거쳤지만

결국 아카데미에서 텐토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다.

이 글이 그때의 사람들에게 그때의 기억을 회상할 수 있는 작은 조각이 되길.

 

 

초판 :: 11.04.05
2판 :: 16.01.12

3판 :: 23.03.13

Son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