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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이란 분은 본인의 생각이 담긴 글을 참 읽기 쉽게 쓰는 재주가 있는 분이다. 지금의 이런 인식과는 달리 예전엔 별 관심 없던 분이었다. 대중의 인식과 비슷하게 이런저런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까칠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던 이미지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 그가 쓴 글은 한 번 정독해본 적도 없다. 다만 그는 최근 젊은 나이에 림프종이라는 큰 병을 얻었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고 가까스로 회복되었다. 특이한 점은 투병 이후의 행보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조금씩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대부분 투병 후의 그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확실히 요즘의 그의 글에선 예전의 그 까칠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매우 차분하고, 담담하고, 조용한 어조 속에 묵직함 울림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런 허지웅의 글을 좋아하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도 있고, 특히 이 책의 제목 <살고 싶다는 농담>은 투병생활을 적극적으로 담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바꾸어 놓았을까? 나는 그것이 참을 수 없이 궁금했다.

 

그는 이 땅의 많은 청년들을 걱정하고 있다. 불행히 찾아온 큰 병, 병과 함께 자신을 괴롭힌 피해 의식, 고통 중에 삶을 포기하고자 하였으나 결국 끝끝내 살아낸 그는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았고, 더불어 이 땅의 청년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많은 약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힘없는 청년들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근 몇 년간 유행했던 신조어는 그러한 풍조를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과거 몇 년간 유행했던 헬조선이니, 노오오력이니, 열정페이니 하는 신조어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말들이다. 그 이전엔 "인생의 좋은 경험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해야지"라는 어떤 정치인의 말이 화제가 되기도 했고,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어처구니 없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도 있다. 난 이렇게 청년층을 착취하는, 더 나아가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희생만 하는 사회풍조가 일반적인 것으로 되는게 너무 역겹다. 나 또한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수련과 근무, 상충하는 두가지 명목 사이에 지금도 꾸준히 그 타당성이 논의 중이나 분명 수련보다는 노동에 과도하게 치우쳐 있는 전공의 수련 시스템이 그것이다. 난 심연으로 가라앉는 그 와중에도 가까스로 참아 냈지만 아직도 많은 전공의들이 drug-항우울제, 혹은 알코올-를 달고 산다. 현재 청년들의 희생이 안타까운 이유는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보상을 얻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노력만 하면 잘 살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저 멀리 지나간 것만 같다.

 

다만 그들에게 담담히, 살기로 결정하라고 말하고 있다. 이 불행은 일어날 것이기 때문에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결코 우리들의 잘못이 아다. 피해 의식은 결국 우리를 망치기 때문에, 피해 의식 대신 상황을 담담히 받아들이라 한다. 오래 버티기 위한 가면을 쓰고, 가면 안의 나를 탄탄하게 만들어 줄 누군가(또는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끝으로 자기 의지에 따라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기 위한 결심을 하라는 것이다. 이런 구구절절한 방법들은 누군가의 눈에는 또 하나의 '노오오력'처럼 보일 수 있겠으나 작가는 많은 청년들이 자신이 죽음을 체험하면서 알게 된 이 방법을 통해 도움을 얻기를 "진정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는 오롯이 순수한 우려와 안타까움 때문이다. 이 중 가장 와닿는 것은 피해 의식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이 피해 의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 사람을 더욱 좀먹고 무기력하게 만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벌어진 일은 벌어진 일, 우리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최선인가를 냉정하게 평가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앞으로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가장 어렵지만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는다. 본인의 고통으로부터 시작하여 타인에 대한 연민을 통해 권면에 이른 그에게 위로와 감사를 전하고 싶다.

 

로마서는 신약성경의 서신서 중 가장 처음에 위치하고 있는 책이다. 알려진 대략적인 연대에 의하면 야고보서-AD 45년-가 가장 먼저 쓰였고, 로마서는 AD 57년으로 옥중 서신서-AD 62년-를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에 쓰였다. 그런 와중에 가장 먼저 위치해 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중요성을 알아 올해 성경 일독은 로마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최근 읽었던 구절 중 하나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람이 변한 것 같다는 세간의 평가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말 변했다. 그는 이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을 통해 최근 자신의 삶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즉 사회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거나 남을 평가하며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일을 그만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일, 가령 가난한 청년들이 자기처럼 힘든 20대를 보내지 않기 위한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림프종은 그에게 그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나 보다. 그가 소망하는 바를, 그 힘든 시간을 통해 이루어 내었길. 또한 앞으로 이루어 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더불어 나에게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생기기를 바란다.

 

 

 

+ 더불어 이런 좋은 신간을 제공해 준 진중문고에게 감사드립니다... 요즘 읽는 책은 대부분 부대에서 빌려 보는데 좋은 책이 은근히 많다.

++ 책 분위기에 휩쓸려서 무거운 척 하게 되는 것 같은데 나도 좋은 글까진 아니더라도, 다시 보았을 때 부끄러운 글만 안 쓰고 싶다는 욕심이 있지만 이 포스트는 뭔가... 뭔가... 너무 어렵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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