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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는 영화

 

 

난 음식이 나오는 영화가 좋다. <식객>처럼 요리 자체가 목적으로 각 잡고 음식을 빡세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라, 그냥 큰 사건들 속에서 한 가지 장치로 슬쩍 사용되는 정도로만 음식이 나오는 영화가 좋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운이 난다고 하지? 그런 영화를 보면 비슷하게 마음의 기운이 나는 것 같아 좋은 기분이다. 요즘은 영화관도 잘 안가고 넷플릭스에 올라오는 영화나 드라마만 보다 보니 자연스레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은 추천영화에 손이 가 비슷한 스타일의 영화만 보게 되는 것 같은데 그 와중에 본 일련의 밥 먹는 영화들이 제각기 조금씩 기억에 남아서 모아서 써 보려고 함. 죄다 일본 영화긴 하네...

 

 

 

 

 

1. 카모메 식당

 

핀란드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사치에의 식당에는 파리만 날린다. 가게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은 있지만 선뜻 들어와 식사를 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첫 손님인 젊은 청년 토비를 시작으로 이 사람 저 사람 식당에 모여들어 주인공 사치에와의 인간적인 관계, 그리고 여러 음식들을 맛보게 된다.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참 많이 나오는 영화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음식은 극 중 가장 처음으로 나왔던 드립 커피다. 첫 손님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아무 대가 없이 가볍게 내려 준 그 커피를 시작으로 사치에의 식당은 헬싱키에 파편처럼 널브러진 개인들을 따뜻하게 이어준다. 말을 이렇게 써 놓으니 지역사회 분위기 전환에 큰 일조를 한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데 사실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은 몇 명 되지 않고 그 와중에 거의 반 정도는 일본인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이 영화의 음식은 꽁꽁 언 마음을 녹이는 호의이다.

이런 류의 영화를 보다 보면 '와 저건 먹어보고 싶다'하는 음식이 있는데 이 영화에서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은 오니기리다. 사실 일본을 꽤 많이 가보긴 했지만 오니기리 먹을 생각을 한번도 못했다. 큰 힘 들이지 않는 간단한 음식이지만 영화에선 왜 이렇게 맛있어 보이던지.

여담이지만 카모메 식당은 촬영지인 핀란드 헬싱키에 실제로 있는 식당이라고 한다. 영화 촬영지로 사용된 곳에는 처음엔 Kahvila Suomi가 있고, 이후에 2015년경 식당 주인이 일본인으로 바뀌면서 상호가 Ravintola Kamome로 바뀌었다. 메뉴도 현지식에서 일식으로 종류가 바뀐 것 같다. 근데 찾아보면 전자는 평이 좋은(#1#2) 반면, 후자는 평이 안 좋은 편(#). 애석하군요. 핀란드에 갈 기약이 없으니 그냥 그런 것이 있었다 정도로 알고 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더불어 이 영화의 식당에 모티브를 얻은 '카모메'라는 식당이 국내에도 있다. 꽤 여기저기 있다. 맛은 평이한 편인 것 같다...

 

 

 

2. 남극의 쉐프

 

가족들이 아무도 말려주지 않아 서러움을 안은 채 땜빵으로 남극 돔 후지 기지의 조리담당으로 파견을 오게 된 니시무라. 함께 있어도 제각기 외로운 아저씨들을 위해 오늘도 니시무라는 열심히 식사를 준비한다. 하지만 그는 가족에게도, 남극기지 대원들에게도 내색한 번 할 줄 모른다. 음식이 슬쩍 나오는 영화를 좋아한다고 앞에서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이 영화는 비교적 음식을 빡세게 만드는 편에 속한다. 그래서 그런 것일지는 몰라도 이런 고립된 곳에서 나오는 식단은 으레 급식 수준의 가정식 위주일 것 같지만 니시무라는 거의 모든 장르의 메뉴를 만들어 낸다. 더불어 해경 소속으로 오랫동안 조리담당을 해 오던 쉐프 니시무라가 성심성의껏 만드는 요리인지라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국내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급양을 생각한다면 이 영화의 장르는 판타지가 아닐까 싶지만 어쨌든 그렇다.

이곳에서의 음식은 버팀목이다. 고립, 그리고 고독은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많은 것을 희생하며 먼 남극으로 온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깊은 고독이었다. 그런 고독을 이겨내고자 서로 부대끼며 열심히 지내고 어떻게든 이 힘든 시기를 넘겨보려 하지만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터지는 여러 가지 개인적인 문제들은 더욱더 사람을 고독하게 만든다. 맛있는 밥이라도 없었다면 이들은 일찌감치 미쳐버렸을 것이다. 매끼 식사로 결정화된 니시무라의 헌신은 영화의 장르를 코미디에서 스릴러로 바뀌지 않게 해 주는 아주 맛있고도 강력한 버팀목이다.

잠수함에선 환경이 너무 좋지를 않으니 밥이라도 잘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런 것과 비슷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와중에 영화 보는 내내 배가 고팠음.

 

 

 

3. 행복 목욕탕

 

모든 갈등이 원인이 되는 철없는 아빠로부터 시작하여 가족이란 무엇이라는 물음으로 끝나는 영화. 이 영화에도 여러 음식이 등장하지만 그중 특별한 것은 사치노가(家)의 규칙인 생일에만 먹을 수 있는 샤브샤브다. 샤브샤브는 이 영화에서 두 번 나오는데 처음에는 이 이상하리만치 제각각인 가족이 처음으로 모였을 때, 두번째는 아유코가 심적으로 진정한 가족이 된 후 먹게 된다. 샤브샤브는 가족 그 자체이자 가족의 탄생의 상징이다. 후타바의 사랑은 이런 이상한 형태의 가족을 마음으로 품음으로써 가족으로부터 버림받는 상처가 아닌 가족이 지닌 따뜻하고 끈끈한 유대감을 대물림하게 된다. 후타바 이후 새로운 가족의 결합을 상징하는 새로운 음식은 아마 키다리게가 아닐까?

시대가 급변하며 요즈음엔 우리가 전통저인 형태의 가족과는 다른 구성의 가족이 자주 보이는 것 같다. 워낙 막장을 치닫는 드라마가 많고, 가끔 현실은 픽션을 뛰어넘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의 사치노가는 그다지 놀랍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진짜 가족이란 뭘까? 꼭 피로 이어져야만 가족일까?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 아닐까? 요즘은 전통적인 개념에서 서서히 바뀌고 있는 것 같다. 중요한 것은 가족 구성원끼리의 강력한 '유대'라는 생각이 든다. 

 

 

 

결국 음식은 사랑입니다. 둘의 공통점은 온도를 지녔다는 것에 있다. 보통은 뜨겁거나 따듯하지만 가끔은 식거나 차가울 때도 있다. 더불어 이것들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필요를 넘어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할 때도 있다.
공교롭게도 세 영화 모두 다 국내 제목이 다섯 글자네. 행복 목욕탕이 그나마 다이내믹한 편이긴 하지만 셋 다 잔잔한 흐름으로 소소하고 편안하게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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