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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루스 서비스 종료에 대한 소고

 
1. 데이터는 유한하다: 나의 사례
기술의 발달로 인한 저장 매체의 변화는 기록과 저장을 더욱 편리하게 한다. 이제는 언제 어디서든 글을 남기고 사진이나 영상을 찍어 저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를 불특정 다수와 쉽게 공유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기술의 발달이 자료의 저장과 보존이 가진 그 유한함의 한계를 해결할 수 있을까?
 
1-1. 사례 1: 외장하드(#)
스스로의 2021년을 정리하며 써 내려갔던 결산에서 외장하드를 날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근본적인 원인은 나의 관리소홀이다. 사용한 지 10년이나 넘도록 백업을 해야겠다는 생각 한번 하지 않았던 나의 죄가 크다. 그 결과 소소하게 취미로 해 오던 나의 디자인 작업물, 그리고 오랜 시간 동안 열심히 찍어두었던 여행 사진이 상당수 소실되었다. 소실되기 직전까지 거의 열어보지도 않고 어떻게 꿍쳐두었는지도 잊어버렸던 자료들이었으니 그다지 아깝지 않을 것 같기도 하지만 예전처럼 다시 열어볼 수 없게 되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좀 아깝긴 하다. 이후로는 이러한 실물 저장장치의 보관이나 관리 문제에서 벗어나보고자 다양한 클라우드 서비스를 사용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만 국내에서 서비스를 종료한 개인형 클라우드 서비스의 사례나, 사물인터넷 코어 서비스를 종료한 구글 클라우드의 경우(#)를 보면 다른 서비스들도 언젠가는 모종의 이유로 서비스의 축소나 종료를 고할 가능성이 충분하다 싶다. 그래서 늘 그랬듯 고민만 하고 있다.
 
1-2. 사례 2: SK C&C 판교 데이터센터 화재(#)
티스토리를 포함한 카카오의 모든 서비스가 그 모체인 데이터센터 화재로 일시적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때가 있었다. 며칠간의 기약 없는 접속불가 끝에 결국 데이터의 손실 없이 모든 서비스가 정상화되었다. 결과적으로는 다행이긴 하지만 아직도 서비스 접근 불가 때의 그 느낌을 잊을 수 없다. 이대로 나의 블로그는 날아가버리는 것인가? 이러한 사고는 기업 입장에서는 세심한 관리로 어느 정도 예방할 수 있지만 서비스를 사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아무런 손을 쓸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지 모르는 사고에 대비해 스스로 자료를 백업하고 관리하며 간접적으로 대비할 수밖에 없다.
 
 

2. 이글루스 서비스 종료
내가 겪었던 큰 사례는 이렇게 두가지다. 데이터는 유한하다. 더불어 확장자 따위가 아니라, 접근방식이 가미된 데이터의 형태 또한 유한하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데이터가 실물 저장장치에 기반하고 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비용이 소모되는 까닭이다. 특히 요즘은 글, 그림 그리고 영상물 등의 디지털 저작물의 관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보통 이러한 것들은 공유를 위해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반으로 저장되고 게시된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가 수익성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이유로 서비스를 종료해 버리면 저장된 데이터의 소실은 물론, 디지털 저작물이 가진 (공개적, 비공개적 경로를 모두 포함한) 접근의 용이함이라는 특별한 가치 또한 훼손될 수 있다. 이것은 사용자의 의지나 노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업자의 사정에 의한 것이고 소비자를 보호하려는 사업자의 적절한 후속 조치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에서 불가항력적이다. KT가 서비스하다 말았던 올레E북이란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소비자가 돈을 주고 구매한 이북의 자료나 저작권을 타 업체로 이관해주지 못했고 이에 대한 금전적인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이 사례에는 소비자의 책임도, 소비자가 취할 어떠한 방법도 없었다. 이쯤 되면 디지털 저작물은 오히려 실물 저장매체에 비해 휘발성이 더욱 높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다음 블로그 서비스가 종료되었다. 다음을 인수한 카카오에서 티스토리와 더불어 다음 블로그까지 비슷한 서비스를 중복해서 운영하고 있으니 이 둘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적절한 조치다. 하지만 다음 블로그에 이어 이글루스가 문을 닫는다. 이글루스가 근 20년이라는 오랜 기간동안 서비스를 이어오며 국내 웹 역사에 큰 획을 그었던 업체였던 만큼 이글루스의 종료는 각종 SNS가 범람하는 시대 가운데 블로그라는 매체 자체가 헤어짐을 예고하는 것만 같다. 이는 당연한 시대의 흐름 같지만 한편으로는 타 업체 블로그 이용자로서 일종의 위기감도 든다. 이대로 블로그라는 매체는 저무는 것일까? 더불어 이글루스의 오랜 역사 가운데 아주 많이 기록되어 있던 주옥같은 글들이 사라진다는 사실에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다. 본인의 글을 소중히 여겼던 사람은 그 글들을 백업할 테지만 그것을 타 플랫폼에 다시 공유하지 않는 이상 이전처럼 불특정 다수가 그 글을 열람할 수는 없다. 진짜 소중한 글은 원글 주인이 아니더라도 다른 누군가가 직접 아카이빙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쉽게 찾아볼 수도 없을 것이다.
 
2-1. 모든 데이터는 저장가치가 있는가?
어쨌거나 저쨌거나, 데이터의 저장과 보존을 위해서는 저장 매체에 맞는 비용과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상 가장 유명했던 도서관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이젠 기록으로밖에 볼 수 없다. 많은 기록을 저장코자 했던 도서관이 스스로 기록이 된 상황은 참 아이러니하다. 관리의 어려움과 자금 부족으로 인해서 서서히 몰락하게 된 것은 예나 지금이나 비슷하다는 느낌을 준다. 더불어 충분한 비용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를 상회하는 큰 개입이나 사고가 데이터의 지속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앞서 말한 판교 데이터센터 같은 사고가 그러하다. 성질은 다를 수 있지만 중국의 분서갱유나 문화대혁명 같은 사건은 사상이 개입하여 발생한 데이터 보존 측면에서의 큰 사고이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우리가 그렇게 보존하고 싶어 하는 모든 데이터를 보존할 필요가 있을까? 사실 그 데이터 중에서는 그냥 사라져도 되는 자료들도 있지 않을까? 2006년부터 쓰기 시작한 이 블로그만 생각해 보아도 모든 포스트를 다 보존하고픈 생각은 없다. 비교적 최근에 이래저래 고민하며 조금은 공들인 글들은 오래 두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쓱쓱 남겼던 여러가지 글들은 사라져도 괜찮지 않을까? 예전에 한 번 내가 이 블로그에 썼던 글들을 둘러보다 학창 시절에 썼던 글들을 보니 공공연하게 게시하기엔 상당히 개인적인 내용이라 부끄러운 마음에 일부를 비공개로 돌려놓은 적이 있다. 그런 글들은 남에게도 보여서는 안 될 글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생각 없던 과거를 씁쓸히 곱씹는 용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다. 만약에 모종의 사유로 이 블로그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된다면 그런 글들은 백업은 하되 이전하지 않고 웹상에서는 그냥 사라지게 둘 것 같다. 이렇듯 간혹 자료가 지닌 가치에 비해 들어가는 비용과 노력이 불필요할 정도로 과다한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싸이월드도 마찬가지다. 많은 이들이 그 당시의 추억을 보존하길 원한다. 사실 싸이월드에는 2000년대의 우리네 생활상이 모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시대를 풍미했던 짤방도 시간이 지나면 찾기 힘들어지는 마당에 우리의 일상과 관련된 작은 기억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존하지 않으면 더욱이 잊혀지기 쉽다는 점에서 이러한 자료의 보존 자체는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 모든 자료들이 다 소중할까? 최근 또다시 복원된 싸이월드의 사진첩을 들어갔더니 '이런 것도 있었네'하며 추억에 잠겼지만 '아니 이런 것까지 있다고?' 하는 사진들도 있었다. 그런 사진들 중 대부분은 다시 확인하기 전까지는 무엇이 어떻게 있는지도 모를 자료들이었다. 그런 자료를 몽땅 보존하길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는 적절할까? 더불어 그 모든 것을 보존하기 위한 비용을 사업자가 응당히 감당해야 할 가치가 있을까? 이런 흐름이 조금은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당장 서비스 종료를 예고한 이글루스만 보아도 그렇다. 사라지기 아까운 글들을 직접 보존하고자 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겠지만, 보통은 직접 나서기보단 다른 누군가 혹은 기업이 나서서 소중한 자료들을 대신 아카이빙하여 사라짐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결국 그런 자료들은 사라지면 아쉽지만 그렇다고 보존하기 위해 나 스스로가 비용과 노력을 투자해야 할 만한 것들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상엔 그런 자료들이 참 많지 않을까?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해 여러 가지 노력이 필요함을 깨닫는 요즘이지만 데이터를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와 더불어 중요한 데이터를 선별하여 보존에 필요한 비용과 노력을 줄이는 것 또한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러 가지 사례들이 한데 모여 이 블로그의 미래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게 된다. 티스토리도 결국에는 사라질 것인데 먼 미래에도 지금처럼 계속 소소하게 글을 남기려면 지금부터 미리 대비를 하는 것이 좋을까? 가장 오래 갈 것 같은 네이버 블로그를 필두로 이래저래 비교하고 검증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같다. 하지만 바라옵건대 티스토리여 부디 만수무강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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