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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여름 부산 - 먹부림 이야기 (1)

 

출산 약 한 달 전 마지막 태교여행. 음식을 포함한 전반적인 사진이나 영상의 깊이가 떨어지는 건 나의 귀차니즘이 문제다. 풍경이나 사물을 보고 이런 각도나 화각에선 어떤 장면이 나올까, 화면을 어떻게 담으면 좋은 느낌이 나겠다는 것을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것 같다. 그 이전에 미적인 감각이 애초부터 없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2월 말에 이어 다시 한번 부산을 찾았다. 지난번엔 급조한 여행인 데다 예기치 못한 숙소 문제도 있어서 계획했던 해운대 구경을 하지 못했다. 그게 내심 한이 되었는지 이번엔 뷰 좋은 곳에 숙소를 잡아 해운대 해변을 마음껏 보고 싶었다. 그랬으나... 여행 전후로 장마철이라 맑은 날이 잘 없었다. 심지어 부산으로 내려가는 고속도로에서는 내 인생 최고의 폭우를 맛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아 비상깜빡이를 켜고 설설 기어야 할 정도였다. 그렇게 도착한 부산도 흐린 건 매한가지였다. 탁 트인 맑은 하늘과 푸른 바다 고운 백사장이 펼쳐진 해운대를 기대했지만 이틀 내내 우중충한 해변만 보다 왔다. 하지만 해가 진 후 피어나는 물안개 속에서 보는 해운대는 참 몽환적이었다. 이런 경험도 나쁘진 않네. 여튼 부산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먹었던 걸 기억하고 기록해 봄.

 

 

1. 상국이네

저녁을 호텔 뷔페를 갈 예정이라 점심은 소소하게 먹기로 했다. 사실 출발하기 전에도 아침으로 뭘 먹고 왔는데 양이 생각보다 많았던 모양이었는지 부산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래서 정한 것이 간단한 분식. 하지만 원래는 상국이네를 가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상국이네는 예전에 한 번 가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까지도 고도로 관광지화가 되어 사람들도 많이 몰리고 가격대도 살짝 있는 편이다. 그리고 너무 큰 이름값을 생각하면 분명 실망하는 맛이라는 것 또한 잘 안다. 그런 와중 그 건너편 집 튀김이 상국이네 이름에는 밀리지만 맛이 뒤떨어지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근데 미리 알아봤던 것과 상호가 달랐다. 왜 바뀌었을까? 쌔함을 느낀 우리는 결국 썩어도 준치라고 그냥 상국이네를 다시 갔다.

 

떡볶이는 살짝 맵고 달달하면서도 묵직하다. 색이 좀 어두운 걸 보면 소스 배합에 간장이 좀 더 많이 들어갔나 보다 싶음. 하지만 간장의 짭조름함보단 녹진한 물엿의 풍미가 뒤끝 있게 남는 편이다. 튀김은 진열된 걸 고르면 다시 한번 더 튀겨줘서 바삭하니 맛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니 여타 분식집 튀김과는 큰 차이가 없는 느낌이었다. 튀김은 5천원이라 되어 있어 무조건 다섯 개를 골라 가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개당 천 원꼴로 소량 주문해도 되었다. 요즘 김밥에는 햄이 안 들어가는 추세인데 여기는 아직도 햄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살짝 밀가루 맛이 강한 햄이라 개인적으로는 불호. 식감과 색을 위한 당근이 빠져 전반적으로 칙칙한 색을 띠고 있는 것도 특이하다. 하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슴슴한 김밥이라 전반적으로는 무난했다. 존재감을 숨기고 다른 메뉴들을 뒤에서 받쳐 주는 느낌.

 

이번에도 상국이네는 잘 먹긴 했지만 부산에 여러 번 와 본 지금 시점에선 그다지 신선하지 않다. 다음에 이 부근에서 분식을 먹을 일이 있으면 근처에 있는 고래사어묵으로 가는 건 어떨까 싶다.

 

 

 

2. 그랜드조선 부산 아리아 디너

신혼여행 때 묵었던 제주 그랜드조선에서 맛본 아리아를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모든 메뉴 다 만족하며 맛있게 먹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버터치킨커리다. 제주를 갈 일이 잘 없고 아마 가더라도 다음번엔 다른 5성 호텔에 묵을 테니 그 버터치킨카레를 다시 한번 맛볼 일은 가급적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하지만 비교적 최근 해운대에 그랜드조선이 생겼고 똑같이 아리아가 있어 이용해 봤다. 아리아 디너는 다 비슷하겠지 하는 생각에 별로 알아보지 않고 무턱대고 찾아갔는데 가격은 2년 전 신혼여행 때보다 좀 더 높고 구성은 절반도 안되었다. 하

 

기대했던 커리는 새우커리뿐이었다. 가짓수가 하나만 있는 것에 대실망. 눈물을 머금고 조금 떠서 먹어봤는데 이조차도 별로 맛이 없었다. 나는 아리아를 커리 맛집으로 생각하고 왔는데 기대가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따흑

아리아는 보통 중식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이곳도 중식이 그나마 나은 편이이다. 하지만 가짓수가 적고 탕수육과 유린기를 제외하면 인상적인 메뉴가 잘 없다. 근데 그 둘은 진짜 맛있었다. 더불어 마파두부 잘하는 집은 잘 없다 쳐도 팔보채를 맛없게 하는 집은 그보다도 더욱 없는데 여기는 그만큼 맛없는 팔보채가 정말 인상 깊었다. 이외 즉석코너에서 먹을 수 있는 짜장면도 보통 중식당에서 파는 일반적인 짜장면 맛이라 그럭저럭 좋았다.

회는 몇 가지 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 봐야 연어나 광어 정도 있었겠지. 상태가 좋았는지도 잘 모르겠다. 결론적으로는 양갈비와 랍스터+가리비 찜이 가장 무난하게 괜찮았던 것 같다. 사진 찍어놓은 걸 보니 전복 버터구이도 괜찮았던 모양인데 이 정도는 디너 뷔페 기본 소양이라고 봐야. 다른 메뉴도 좀 있지만 전복이 기억에 남는다는 건 다른 메뉴가 그만큼 기대 이하였다는 밀과도 동일하다. 육회는 냉동인 것에 비해 깊이감이 느껴져서 요상하다. 의외로 맛있었다. 이외에 사진은 없지만 제주 아리아에서 맛있게 먹었던 대게 다리 찜은 부산에도 있지만 상할 걸 우려해서 그런지 차갑게 식혀 놓아서 맛이 좀 떨어졌다.

부산의 많은 호텔 디너뷔페 중에서 굳이 아리아를 고른 건 제주 아리아에서 맛보았던 메뉴 중 내가 좋아하는 버터치킨커리도 있지만 아내가 좋아했던 풍부하고도 훌륭한 디저트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메뉴들과 같이 디저트 또한 제주 아리아보다 종류가 적어서 실망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망고케익은 참 훌륭했다. 이외에는 특이하게 수박빙수를 내어 주는데 이건 꽤 괜찮았다. 퍼먹고 있으면 실망감이 조금씩 누그러지는 맛이다. 가짓수가 적은 대신에 이런 것으로 승부를 보는구나 싶다.

 

 

 

3. 거대곰탕

부산은 국밥의 도시이지만 이번에도 돼지국밥은 딱히 구미가 당기지 않았다. 사실 국밥 식사 넣을 자리가 없었다. 그 와중에도 거대곰탕은 궁금했다. 곰탕 집은 잘 찾아보기 힘든데 이곳은 어찌도 유명하단 말인가? 그래서 특별히 코스에 넣었다. 특히 부산 오기 전에 친구가 몇 군데 추천해 준 리스트에도 포함이 되어 있어 꼭 가 보자고 마음먹었더랬다.

다행히 웨이팅 생기기 전에 도착해 착석도 주문도 바로 했다. 평냉은 좋아하지 않아 애초에 관심이 없었지만 이날은 메밀 문제로 냉면 메뉴는 안 한다더라. 나는 더 진한 뽀안곰탕, 아내는 맑은 고기곰탕을 주문함. 진한곰탕은 정말 녹진하다. 이런 농도의 곰탕은 처음이다. 소금이나 후추를 더 치지 않아도 딱 알맞은 간에 절정에 달하는 구수함이 짜릿하다. 밥을 말면 밥이 불면서 국물의 원래 풍미를 해치는 것이 싫어서 다른 그릇에 따로 밥을 말아먹어봤는데 확 싱거워지면서 별로. 계속 밥 따로 국물 따로 먹었다. 국물 안에 담겨 있는 고기는 얇고 부드럽다. 단짠단짠 한 양념장 찍어 먹으면 딱 좋다. 또한 진한곰탕엔 따로 추가 주문 할 수 있는 명란토핑이 처음부터 포함되어 나온다. 직원의 설명에 의하면 국물 반쯤 먹다가 안에 넣어서 풀어 먹으란다. 그래서 그렇게 해 봤는데 내 입맛에는... 솔직히 넣기 전과 넣은 후의 차이는 그렇게 잘 모르겠다.

아내의 맑은곰탕은 좀 더 진한 갈비탕 느낌이다. 이쪽도 깔끔한 맛에 나름 괜찮았다. 다른 사람들 주문하는 메뉴를 슬쩍 보니 진한곰탕 말고 뽀얀곰탕도 많이 주문하지만 이 맑은곰탕도 많이들 주문하더라. 하지만 맑은곰탕보다는 진한곰탕이 단연 좋았다. 아내도 이쪽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 . 그리고 함께 먹었던 이북 스타일의 만두가 정말 인상적이다. 과식하지 않으려고 세 점만 주문해서 먹었는데 조미료를 넣었는지 말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근데 분명 어디서 먹어본 맛이다 싶었는데 생각해 보니 장모님이 빚어 주신 만두 맛이었다. 우리 장모님은 거제 분이신데 아마 배우셨나 보다. 장모님의 만두를 또 한 번 맛보고 싶군. 평냉은 예전에 다른 곳에서 딱 한 번 먹어본 적은 있으나 내 스타일이 영 아니라 이후로는 눈길 한 번 안 주고 있었는데 다음에 여기 오면 평냉을 한 번 먹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4. 이재모피자 서면별관점

이재모피자는 왜 이토록 유명할까? 이제는 약간 부산의 명물로 등극한 느낌이다. 아무쪼록 침착맨도 찾아간(#) 이재모피자를 나도 한 번 가 봤다. 캐치테이블로 확인하니 본점은 20여분, 서면점은 10분 조금 넘게 기다려야 하더라. 어느 브랜드건 본점만의 분위기와 맛이 있다지만 이제는 나이가 조금씩 들어서 그런지 긴 웨이팅이 힘들어서 싫을뿐더러 거의 만삭에 다다른 아내를 생각하면 기다림을 피해야만 했다. 그래서 서면별관점으로 향했다.

가장 대표적인 치즈 크러스트 피자 하나와 오븐스파게티 하나씩 주문함. 치즈크러스트는 토마소소스가 특별한 건 아니지만 치즈에 큰 공을 들인 느낌은 확실히 전해진다. 국내산 임실치즈피자를 쓴다더라. 가격이 싼 건 아니지만 요즘 피자가 다들 비싼 거 생각하면 가격 자체는 나쁜 편은 아니며 이 가격에 이 정도 퀄리티면 오히려 혜자다 싶다.

오븐스파게티를 먹어본 지가 꽤 오래되었다. 예전에 대학생 때 피자헛 배달 주문해서 먹을 때 하나씩 시켜 먹는 오븐스파게티. 아무리 박박 긁어먹어도 항상 알루미늄 용기에 들러붙어 떨어지지 않는 치즈가 아쉽지만 팬에 담겨 나오는 이곳 오븐스파게티는 치즈를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을 수 있다. 치즈 크러스트 피자처럼 스파게티도 토마토나 고기 맛이 아니라 치즈 맛으로 먹는 건 매한가지다. 토마토소스와 치즈가 낭낭하게 들어 있어 파스타 면을 다 먹고 나서도 소스와 치즈가 가득 남아 있고 그것만 휘휘 저어 먹어도 맛있다.

 

이재모피자는 김치볶음밥도 그렇게 맛있다던데... 다음에는 볶음밥을 위해 다른 지점을 들러야 하나 싶다. 우리 집 근처에도 이런 피자집 하나 있으면 참 좋겠어요.

 

 

 

5. 대풍관 꼬막정찬

해운대엔 친구한테 추천받은 다른 집도 많고 따로 알아본 집 중에 가 보고 싶은 집도 많았다. 하지만 임신 중인 아내를 위한 메뉴를 하나 꼭 선택해야겠다 싶었다. 다른 해산물은 못 먹고 꼬막을 좋아하니깐 이번에도 꼬막을 먹으러 가는 것으로. 묵었던 호텔에서 그렇게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아내가 좋아하는 꼬막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찾았다. 여긴 식당도 크고 별관도 있고 우리가 갈 때만 해도 웨이팅은 없었는데 다 먹고 나오니 웨이팅이 생겼을 정도로 사람이 꽤 많이 몰리는 곳이었다.

 

거제 여행 때 갔던 꼬막집(#, 3.)과 자꾸 비교를 하게 된다. 두 식당이 추구하는 방향이 다를 것 같긴 하지만 전반적인 구성은 대풍관 쪽이 더욱 취향에 맞다. 요즘 스타일로 비벼 나오는 꼬막 비빔밥은 무난히 맛있다. 그것보단 꼬막 무침을 밥에 비벼 먹는 쪽이 훨씬 좋다. 이외에는 생선을 통째로 튀겨 낸 생선튀김, 새우장 또한 훌륭했음. 새우장 적당히 단짠해서 참 맛났는데 와이프가 날 것을 못 먹어서 좀 아쉽다. 이외에도 반찬 하나하나에 공을 들인 느낌이 물씬 풍긴다. 다른 반찬에 정신이 팔리다 보면 메인인 꼬막에 집중하지 못하게 된다. 묵은지를 씻어서 참기름 등과 버무려 낸 반찬이 있었는데 와이프와 함께 정말 맛있다고 계속 칭찬함. 전반적인 상차림이 좋고 음식 하나하나가 모두 맛이 좋으며 무엇보다 가성비가 매우 좋다. 여러모로 잘 먹었다.

 

나머지 아난티에서 먹었던 건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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