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와타 사토루는 한국 닌텐도 팬들에게 매우 친숙한 인물이다. 물만 건너면 금방 갈 수 있는 옆나라 사람이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사랑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3DS가 런칭되었던 2012년, 첫 한국 닌텐도 다이렉트에서 한국어 대본으로 한국 닌텐도 팬들과 직접 소통하려 했던 그 진실한 모습은 실시간으로 바라봤던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 인상을 남겼다. 그래서 지금도 문득 그가 한번씩 그립다.
반면 미국 닌텐도 씬을 대표하는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사장 레지널드 피서메이는 상대적으로 덜 와닿는다. 서양에서는 이와타 사토루만큼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한국과 미국은 너무 멀다. 내가 가진 레지의 이미지는 그저 이와타 사토루 옆에 서 있는 거구의 아저씨 정도였다. 심지어 레지가 닌텐도 아메리카 사장 자리에서 사임한 지 벌써 5년도 넘었다는 걸 책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되었을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닌텐도의 역사에서 레지를 빼면 섭섭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다. 앞서 닌텐도 다이렉트 이야기를 했지만 레지는 첫 한국 닌텐도 다이렉트보다도 더 전, 2011년 초대 닌텐도 다이렉트에서부터 등장한 명실상부 닌텐도의 대표 스피커였다. 또한 GBA의 황혼기와 게임큐브로 인한 암흑기에서 닌텐도를 일으켜 세운 입지전적인 인물 중 하나이다.
이 책은 한평생 마케팅에 몸담았던 그의 일대기를 스스로 써 나간 책이다. 구성만 보면 닌텐도 밖에서의 과정이 반, 닌텐도에서의 과정이 반 정도다. 그래서 닌텐도에서의 일화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책을 집어든 닌텐도 팬에게는 책 내용의 반 정도는 멀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뒷이야기 보다도 혁신으로 점철된 본인의 업무 철학이 훨씬 짙게 담긴 책이다. 이 책은 읽는 대부분은 레지처럼 마케팅과 관련된 일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마케팅을 넘어 모든 유형의 업무에 포괄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꼭꼭 눈여겨보면 참 좋을 것이다.
레지는 정말 많은 말을 이 책에 남겼지만, 나에게 가장 와닿았던 레지의 핵심적인 메시지는 뚜렷한 목표, 유동성, 그리고 현 상황에 안주하지 말 것이다. 조금만 더 덧붙이면 다음과 같다.
1. 명확한 목표 설정의 중요성. 경험과 지식, 신념을 토대로 목표를 정할 것. 목표는 몇 가지 단어나 이미지로 표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일 것.
2. 유동성 또한 겸비할 것. 신념이 아니라 고집이라면, 혹은 다른 이가 제안한 또 다른 방법이 더욱 좋은 방법이라면 내 의견을 꺾을 수 있도록 늘 마음을 열어 두기.
3. 현 상황에 안주하지 말고 최선을 다할 것.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항상 대비한다면 주어지는 상황을 최대한 잘 활용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현재에 안주하지 못하도록 어려운 질문을 던지는 조언자를 가까이할 것.
이외에도 리더십, 멘토, 인간관계와 소통 등 다양한 말이 있지만 너무 많으면 다 기억하기 힘들고 이 세 가지만 잘 간직하고자 한다. 다만 레지가 몸담았던 P&G의 조직문화 중 '한 장의 메모', 닌텐도 오브 아메리카의 핵심 조직문화(사고/성과/자아/동료/리더십), 그리고 링킹대학교 졸업식 축사에 녹여낸 레지의 인생 원칙은 마음에 새길 만하다. 레지의 축사는 아래에 요약해 둔다.
● 링킹예술대학교 졸업식 축사에 녹여낸 레지의 5가지 인생 원칙
1) 내게 일어나는 일은 나 자신에게 달렸다.
2) 인생이란 절대 만만치 않으니 전력을 다하라.
3) 다른 대안에 마음을 열어라.
4) 두려움을 받아들여라.
5) 현재에 충실하게 살고 일상에서 재미를 찾아라.
여담으로 그가 강조하는 파괴적 혁신의 의미가 담긴 원제 'Disrupting the Game'과는 달리 국내에서 번안된 제목 '우리의 임무는 게임을 만드는 것입니다'는 아마 나 같은 닌텐도 팬을 겨냥해 새롭게 지은 것 같다. 책 표지도 한때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닌텐도 DS다. 원제 그리고 책 전체가 목놓아 소리치는 혁신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여서 조금 별로였다. 하지만 일본에서 번안된 제목 '벼랑 끝에 있던 미국 닌텐도를 부활시킨 남자'를 보고 이런 건 어디서나 똑같구나 싶었다. 심지어 일본판 표지에는 이와타 사토루의 이름도 실려 있다. 그래요. 각국에서 가장 솔깃해할 만한 포인트를 짚어내는 것은 마케팅에서 참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