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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싹 속았수다

 

 

한 편의 시집 같은 시리즈라 말하기엔 내가 시집을 즐겨 보는 스타일은 아니라서 내 스스로가 와닿지 않는다. 좋은 캐릭터와 짜임새가 있는 이 시리즈에 어떤 말을 얹으면 좋은 감상이 될까 수없이 고민한다. 늘 그렇듯 생각나는 말들 위주로 간단히 끊어서 써 본다.

 

 

1.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오애순이란 인물이 무언가를 얻고 잃는 이야기다.

 

촌지가 없어 더 많은 표를 얻고도 빼앗긴 급장. 관식이 하나라도 이루어 주겠다던 육지 생활, 대학 진학, 시인의 꿈. 엄앵란 원피스, 이층 양옥집, 뽀삐 같은 강아지를 키우고 자녀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며 거의 매일 외식을 하는 부자의 삶. 무엇보다도 나에게 모두 주고 떠난 어머니, 그리고 가장 가슴 아픈 동명. 잃어버린 그 모든 것을 그리워하고 마음 아파하던 애순이었다. 하지만 그추룩 소중했던 관식은 잃는 것이 아니라 너울너울 떠나보낸다. 수많은 잃어버림 속에 초연해진 애순의 모습.

 

그래서 애순에게 관식은 잃은 것이 아닌 가장 큰 획득이다. 사실 평생 잃은 줄만 알았던 애순은 많은 것을 얻으며 살았다. 급장보다도 더 얻기 힘든 여성 계장 타이틀. 못다 한 육지 생활과 무려 서울대로 대학 진학이라는 꿈을 대신 이뤄 준, 문자 그대로의 '너(나) 같은 딸' 금명. 고희의 나이에 완성해 관식이 떠나기 전 그와 함께 나누었던 시인의 꿈. 무엇보다도 거친 폭풍우와도 같은 삶 가운데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족, 그리고 단단해진 그녀 스스로를 얻었다. 그 모든 것이 찬란하고 값지다.

 

이렇게 사람의 일생 가운데 무언가를 얻고 잃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을 담은 광례의 삶, 애순의 삶, 금명의 삶을 이루는 이 모든 것이 실제 우리네 삶과 꼭 닮아 있다. 그래서 세상 어디선가 실재했었을 법한 이야기라 더욱 와닿는다. 그리고 이런 역경을 이겨낼 수 있는 버팀목은 사람(연인, 가족, 그리고 이웃)에서 비롯된 사랑임은 삭막한 현세대에 좋은 귀감이 된다. 우리 서로 사랑하며 살아요.

 

 

 

2.

아무래도 나 또한 한 아이의 아빠다 보니 특히 와닿고 많이 슬펐던 부분은 동명을 잃었던 장면이다. 나는 학창 시절 언어 공부할 때도 은문은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김광균의 시 <은수저>(#)를 볼 때면 늘 마음이 울렁거렸다. 그때나 지금이나 "맨발 벗은 아이가 울면서 간다." 대목에선 아이 울음소리가 정말 들려오는 것만 같다. 아이 잃은 부모의 애통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단장지애' 말이 있지만 실제로는 훨씬 큰 고통이리라. <은수저>에서도, 그리고 동명을 잃은 애순과 관식의 마음을 어떻게 헤아릴 수 있겠냐만은 그 마음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함께 마음이 아파온다. 그래서 아이들은 눈 깜짝할 새라는 말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있을 때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을 주어야 한다.

 

 

3.

애순과 관식을 대하는 금명의 모습을 통해 지난날의 내 모습을 다시 한번 본다. 다른 사람 대할 때는 연애편지 쓰듯 하지만, 백만 번 고마운 은인에게는 낙서장 대하듯 한다는 금명의 나레이션은 매우 사무친다. 어릴 때는 마음의 성장이 덜 되었기 때문에 미숙하고 이기적임은 어찌 보면 당연한 듯싶지만 그 철없고 나만 아는 모습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스스로를 조금은 아는 지금과는 달리 과거의 나는 나를 알아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성찰 없는 자세는 주위 사람을 더욱 막 대하게 만든다. 나의 날 선 한마디, 무심한 행동 하나하나를 내 부모님은 어떻게 다 너그럽게 참으셨을까? 그래서 부모님은 참 바다 같다. 그리고 나도 우리 아이에게 바다 같은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마음도 함께 먹는다.

 

 

4.

여기서부턴 짧게만 짚는 트리비아.

 

1인 다역 기법을 활용한 작품은 이전에도 정말 많았지만 앞서 말한 '나와 똑 닮은 딸'을 같은 배우로 풀어낸 점이 시선을 끈다. 이런 영화나 TV시리즈에 대한 조예가 깊지 않아서 이 작품처럼 모녀가 같은 배우로 나왔던 작품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연기력에 구멍이 있는 배우가 하나도 없다. 사실 앞서 말한 '세상 어디선가 꼭 있었을 법한 이야기'라는 말은 독특한 전개가 없는 무난한 스토리라는 말이다. 이 시리즈의 장점은 그런 전개보다도 우리의 생활상과 시대상을 잘 녹여낸 점이다. 그래서 극이 다소 슴슴할 수 있으나 이런 극을 견인하는 것은 배우들의 연기, 특히 염혜란과 아이유 두 사람의 열연이다. 나는 무엇보다도 염 배우가 참 좋다. 특히 <마스크걸>(#)에서 이 배우의 폭발하는 에너지를 아주 잘 느낄 수 있다. 그 어떤 옷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배우. 그래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된다.

 

 

시라는 문학적 요소를 주요 소재로 삼은 작품이다. 이런 문학적 기조는 시리즈 전반에 깔려 있다. 극 중 드문드문 나오는 시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애순과 금명이 나지막이 읊조리는 나레이션에도 시적인 표현 투성이다. 특히 극 중에서 발간된 애순의 시집을 현실에서도 발간해 달라는 목소리 또한 많다. 앞서 시는 좋아하지 않는다 여러 번 말했지만 이 시집이 출판되면 한 권쯤은 간직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관식과 애순 가족의 삶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우리도 어떤 상황에서 잘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는 용기를 얻는다. 그만큼 마음 따뜻해지는 시리즈. 아내와 함께 본다고 TV시리즈를 재관람하는 일이 몇 번 있었지만 함께 봤던 시리즈를 다시 한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다. 몇 년이 지나 가물가물해질 때쯤 다시 한번 꺼내 보면 좋겠다. 그때는 우리 아이, 혹은 아이들과도 함께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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