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무엇으로 행복하게 사는가

1.
이 드라마가 가장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내가 느끼는 행복'인 듯싶다. 사람마다 자라온 환경, 삶을 살며 경험한 것들이 다르다. 때문에 가치관도, 그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요소도 천차만별이다. 물론 사회적인 성취는 중요하지. 하지만 그것이 행복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낙수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던 임원 자리의 백상무도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앞날 때문에 공황이 온다. 임원 달았다고 꼭 행복할까? 사회적인, 또 개인적인 성취는 돈과 같다. 꼭 그뿐만 아니라 세상에 있는 다른 것 모두가 그렇다. 그것들은 수단이 되어야 하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진정한 것은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 그 이전에 진정으로 행복한가 하는 것이다. 행복을 더욱 오래 지속할 수 있는 것은 일시적인 지위나 물질 같은 것이 아니다. 가족의 유대, 사랑, 그리고 갑작스러운 소나기를 피해 허름한 소파에 몸을 기대에 쉬던 낙수가 느꼈던 감정인, 진정한 '나'를 찾고, 행복을 느끼는 현재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이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좀 더 오래 지속가능한 가치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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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 드라마를 보는 흐름에 따라 감상이 조금씩 달라졌다. 좌천되고 공장에서 여러 수모를 당하며 퇴직 후에도 큰 사고가 끊이지 않는 낙수를 보며 사람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구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가뜩이나 미래에 대해 고민하며 염려하는 마음에 이 드라마가 기름을 붓는 느낌. 다만 후반부에서 낙수가 상황을 수습하고 회복하는 과정을 통해 희망을 엿보았다. 세상에 절대라는 건 없다. 나는 현재에 만족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지금의 이 만족도 언제 깨질지 모른다. 어떤 어려움에도 잘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은 직책이나 지위 등 외적으로 보이는 것들로 이루어진 나가 아니라 단단하고 유연한 내적인 나다. 외적인 것을 쫓기만 하다 몰락한 낙수는 내적으로도 강한 사람이었기에 포기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냈다. 그래서 직장이 없어졌을 때의 나는 어떤 존재인가를 미리미리 생각하라는 원작 작가의 인터뷰(#)가 더욱 와닿는다. 나도 우선 나부터 단단해지고, 내가 지키고 싶은 유구한 가치인 신앙과 가족과 사랑을 위해 노력하면 지금처럼 행복을 이어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 본다.

2.
원작을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감상 차이가 있는 듯. 나는 보지 않은 편이라서 원작의 캐릭터나 전개가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관심이 덜 한 편임에도 불구하고 초중반의 김부장을 너무 무능력하게 그린 건 좀 와닿지 않았다. 그래도 대기업 부장인데... 친인척 중에 대기업 부장 하셨던 분이 있어서 알지만 보통 능력과 노력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거든. 초반부 좀 더 코믹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시작하기 위해 감행했던 캐릭터 수정이었던 것 같다. 공장 씬도 혹평이다. 서울을 제외한 지방을 깡촌으로 묘사하고 공장 안전관리직을 개똥이나 치우는 사람으로 묘사한다. 특히 생산직은 배 안 고프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던데 왜 대 ACT 산하 공장이 늦게 온 사람은 먹을 밥도 없는 건지. 이런 건 마치 메디컬 드라마의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교수가 초진을 보는 것처럼 현장을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필요 없는 부분은 제하고 인물 위주로 더욱 몰입할 수 있도록 각색을 거치는 과정 같다. 다만 누가 보기에도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게 만드느냐 하는 디테일이 조금, 아니 좀 많이 부족했다 싶다. 이외에도 알아보면 볼수록 원작과는 차이가 극명하게 나는 부분이 더러 있는데 이런 걸 보면 원작의 주요 인물과 흐름만 채용해서 다른 작품을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 맞겠다. 그러니 더더욱 원작을 읽고 싶어 지는군.
3.
낙수의 아들 수겸 파트는 없어도 될 파트 같다. 굳이 이유를 붙인다면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인 낙수 아래에서 키워 온 반발심과 독립심이 20대 초반이 어떻게 질풍노도의 시기를 극복하는가 하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은 듯했다. 보통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말을 붙이는 나이대보다는 좀 늦은 것 같지만 사실 20대 초반도 충분히 혼란스럽다. 사실 20대 전체뿐만 아니라 30대 초반도,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는 30대 후반~40대도 다들 불안하고 혼란스러울 것이다. 나이가 더 많은 김부장, 도부장 그리고 백상무 또한 그랬으니깐. 다만 이 과정도 좀 더 체계적으로 잘 그렸다면 더욱 좋았을 텐데 그냥 후드티 그림 그려 넣어서 팔다 보니 잘 되었더라로 얼렁뚱땅 마무리되니 설득력이 부족해지는 것 같다. 12화 안에 이 이야기 저 이야기 꽉꽉 채우다 보니 분량 문제로 더 자세히 그려낼 수 없었던 것 같다. 또한 그 나이 때 청춘이 그렇듯 수겸과 한나의 로맨스가 설득력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냥 안 봐도 될 것 같았다. 마치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과 서민영의 로맨스처럼 궁금하지가 않았다.
4.
여기서부터는 트리비아
등장인물 이야기. 극의 흐름과 설정 세세한 연출 등을 떠나 전반적으로 캐스팅이 훌륭하다는 느낌. 주요 인물들은 외모와 함께 연기력까지 출중하며, 수겸 역인 차강윤 배우의 어리숙한 연기도 20대 초의 풋풋한 모습과 어느 정도 매칭이 되어 거부감은 덜했다. 언니 박하진을 도발하는 박하영은 언니를 도발하여 꼭 공인중개사를 따게 하려는 속내가 있나 싶었지만 이후 전개에서 하영 부부 모두 평면적인 무개념+무지성 캐릭터에 불과했다는 것이 좀 깼다. 같은 집안 가족이 아니라 철천지 원수지간인가 싶을 정도로 예의 없는 모습으로 그려냈다. 다면적인 모습을 통한 반전을 기대했는데 기대가 너무 컸나 보다. 사실 주인공인 김낙수를 제외하고는 다면적인 인물이 별로 없다. 더 나아가 '질투는 나의 힘'의 이정환 등은 사기를 치고 날라버리고는 그대로 리타이어였던 것도 깼다. 이정환은 평면이고 뭐고 평가할 거리조차 없다.
내가 만약 김부장이라면?을 자꾸 생각하게 된다. 아산공장 20명 해고 명단을 들고 본사 인사팀에서 수없이 많이 갈등하던 김부장. 나와 상관없는 20명의 해고를 돕고 내가 살 것인가? 아니면 그 사람들에게 시간을 아주 조금 벌어주고 나의 욕망과 사회적인 지위를 죽일 것인가? 트롤리 딜레마를 조금 변형시킨, 소중한 사람 하나를 살릴지 상관없는 사람 여러 명을 살릴지 물어보는 질문을 웹에서 종종 마주한다. 그때마다 내 답은 늘 정해져 있었고 변함이 없다.
배경음악을 들을 때마다 자꾸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느낌이었다. 특히 자꾸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이 떠올랐다. 마지막화쯤 가서 알고 보니 두 작품 다 음악감독이 정재형이더라. 좋았다.

초중반부가 이래저래 허술하지만 전반적인 흡입력 하나는 걸출했고 결말부에서의 울림을 잘 그려내었다. 만족스럽게 잘 보았습니다.





Sonan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