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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리야마 아키라

 

Akira Toriyama

1955-2024

 

 

어릴 땐 이 블로그에 이런저런 추모글을 멋모르고 썼던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난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추모를 생각 없이 가볍게 했던 것은 아닌가 싶은 의문이 문득 들었다. 그리고 블로그의 글도 남들 보기에 부끄럽다는 생각에 어느 순간부터는 추모글을 안 쓰게 되었다. 근데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 별세 소식은 또 이런저런 생각이 좀 들어서.

 

 

토리야마 아키라 작가의 대표작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은 닥터 슬럼프와 드래곤볼이다. 내가 접한 단 두 가지 작품도 그렇게 딱 두 가지다. 사실 다른 것도 하나 있는데 그건 잊을만하면 웹에 올라오는 단편 레이디 레드... 하지만 단편은 말고 장기연재만화 두 작품에 대해서 추억을 하고 싶다.

 

 

 

10초만에 보는 드래곤볼

드래곤볼은 아마 내 나이대 남자애들이라면 안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도 42권까지 전부 다 읽었다. 아마 처음으로 완독했던 코믹스 시리즈였을 것이다. 이 시절에는 주마다 타 쓰는 용돈으로는 단행본을 사모으기엔 역부족이었다. 그 이전에 부모님의 눈총에 만화책을 사 모은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반면 읽어야 할 만화책은 참 많았다. 그래서 그냥 용돈을 쪼개어 동네 곳곳에 있는 만화책 대여점에서 권당 삼사백 원 정도 주고 일주일 빌려 읽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이 드래곤볼은 한참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던 학원에서 읽었다. 초등생 이하를 대상으로 한 학원이라 원내에 작은 놀이방이 있었고 그 놀이방 책장에 아이큐 점프판 드래곤볼이 무려 전권이 깔려 있었다. 내가 그 학원을 꽤 오래 다녔기 때문에 정말 무지무지하게 마르고 닳도록 읽었다. 사실 일부러가 아니라 이 학원의 드래곤볼 단행본만큼은 살다 보면 문득 떠오를 때가 있었다. 왜 그 학원에는 드래곤볼이 그것도 전권이나 있었을까? 누가 갖다 놓았을까? 아직도 궁금하다.

 

정겨운 부우

나는 특히 부우편을 참 좋아했다. 최강의, 최악의 적이지만 싫어할 수 없는 그 푸근한 외모의 마인 부우. 뿐만 아니라 최근까지도 무언가를 모아 한번에 터뜨리는, 혹은 십시일반 힘을 모아 큰 것을 만들어내는 행위의 대명사로 사용되는 원기옥 장면은 특히 어린 시절 내 마음을 너무나도 뛰게 만들었다. 다만 마인 부우 사태 이후에 나온 GT니 뭐니 하는 건 하나도 모른다. 내 기억의 드래곤볼은 원작 42권까지의 드래곤볼뿐이다. 가끔 웹에서 어디까지가 드래곤볼의 근본인지, 특히 GT를 근본으로 보아야 할지 논쟁이 쿨타임만 차면 올라오는데 나에게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원작 이후의 것들은 모두 스핀오프 작품이다.

 

과거 어린이의 시선으로는 작화가 어떻니 했던 기억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스토리와 더불어 작화 또한 중시하는 나로서는 토리야마 아키라의 수려한 작화는 좋은 매력 포인트였다. 어릴 때는 만화가라면 당연히 이 정도로 그려야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보니 토리야마 아키라의 작화 실력과 그 철학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특히 표정(#), 공간(#)을 십분 이해한 디테일한 작화, 프레임을 이용한 연출(#)은 누구나 따라 하기 힘든 요소다. 이런 연출을 통한 재미를 요즘 웹툰에선 느끼기 어렵다는 점이 참 아쉽다.

 

 

 

지극히 닥터 슬럼프 다운 짤

닥터 슬럼프에 대한 소회는 다소 짧다. 앞서 발간되었던 닥터 슬럼프는 내 세대를 조금 빗겨 나갔다. 그래서 아쉽게도 원작 코믹스를 보지는 못했다. 닥터 슬럼프는 TVA 원판도 아니고, 2000년에 MBC에서 방영했던 리메이크 TVA를 본 기억만 있다. 이 시리즈 오프닝(#)이 정말 좋다. 수년 전 온라인 탑골공원 열풍이 불 시절 추억의 만화영화 오프닝들도 덩달아 유행을 탔었는데 좋은 오프닝 순위엔 꼭 상위권에 올라갔던 것 같다.

 

아라레의 지구 뿌셔! 는 닥터 슬럼프가 아니라 최근의 드래곤볼 중에서.

애니메이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 천진난만한 아라레가 귀여웠던 것이 참 인상에 남는다. 몰랐는데 닥터 슬럼프는 코믹스부터 엄청난 인기를 끌어 애니메이션화를 위해 꽤 많은 회사에서 달려들었다던 것, 그리고 내가 봤던 리메이크판 TVA는 원작의 느낌이 없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시간이 지난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년만화는 뭐냐고 물으면 웨스턴 샷건이지만, 최고의 소년만화를 뽑으라고 하면 단연 이 드래곤볼이다. 간만에 드래곤볼 읽고 싶고 닥터 슬럼프도 원작을 한 번 보고 싶다. 요즘은 복각도 잘 되어 있고 출판도 잘하고 있어 전권 사들이는 건 문제가 안되는데 집에 책을 들여놓을 자리가 없고 사더라도 아내가 곱게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그냥... 마음속으로 추억만 해야겠다. 그런 와중에 해당 코믹스 판매량이 급증하는 걸 보면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싶다. 누가 이런 말을 했는데 참 공감되더라. 드래곤볼은 명작의 반열을 넘어 하나의 장르가 되었다고. 그 드래곤볼은 아직도 새로운 코믹스와 애니메이션이, 게임과 기타 파생 상품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100살까지 살 것이라던(#) 토리야마 아키라는 그런 큰 것을 우리에게 남기고 떠나갔다. 그의 작품과 이름은 오래 남을 것입니다. 내 유년시절의 큰 기억을 채워 주셔서, 그리고 지금까지 추억할 거리를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부디 편히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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