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국내 여행보단 해외여행을 좋아한다. 이번 겨울에도 해외로 떠나고 싶었으나 감사하게도 작년 말 우리에게 첫째가 찾아온 덕분에 바람에 해외여행의 꿈은 접어야 했다. 대신 그만큼 국내를 더 잘 돌아다니자 해서 선택한 것이 그동안 벼르고 별렸던 거제, 통영을 포함 남해안이었다. 거제가 고향인 장모님의 도시... 언제 한 번 회 먹으러 가자고 하셨는데 장모님 없이 우리 부부 둘만 여행을 떠났다.
늘 이야기하지만 여행에 있어서 가장 큰 목적은 관광보다도 먹부림이다. 그리고 이번 여행 메뉴 선택의 대전제는 (1) 해산물 위주로, (2) 임신한 와이프를 배려해서 날것은 최대한 피할 것 이 두 가지였다. 필요하면 적당한 선의 기다림은 감내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웨이팅 여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운이 좋게도 지난 도쿄 여행처럼 이번 여행 또한 웨이팅이 하나도 없었기에 참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웨이팅이 없었던 궁극적인 이유는 그 당시 거제와 통영에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해외여행보다 가성비가 떨어지는 국내는 여행을 잘 안 하게 되는구나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사람이 훨씬 적어서 놀랐다. 다른 지역은 괜찮았을까? 여튼 이번 여행에서 먹었던 몇 가지 것들을 풀어본다.
1. 거제 덴바스타 료칸 - 석식과 조식
일본 본토와 국내의 료칸은 그 목적이 다르다. 일본의 료칸은 가족탕, 대중탕 관계없이 목욕을 할 수 있으면서도 식사 등을 포함한 전반적인 서비스에 집중하는 반면 국내 료칸의 대부분은 프라이빗한 히노끼 실내탕이 알파이자 오메가다. 거제엔 덴바스타와 토모노야 두 개의 료칸이 있는데 식사는 그다지 기대할 만하지 않다는 리뷰를 보았음에도 굳이 덴바스타를 선택한 이유는 그나마 더 최근에 지어졌기 때문이었다. 그저 분위기 있어 보이는 좋은 곳에 묵고 싶은 마음이 컸다. 밥은 다음날에 먹으면 되니깐.
석식 구성 자체는 알차다. 아니 단지 알차 보이는 것뿐이다. 가짓수는 많지만 실속 있는 것은 그다지 없다. 애초에 회를 중심으로 한 정통 일식 자체가 없다. 심지어 후토마키라고 나온 것은 만든 지 좀 되어 밥이 조금 굳었고 회초밥스러워 보이는 것 위에 올라간 것은 간장에 조린 새송이버섯이다. 하지만 화로에 굽는 소고기는 그럴싸하다. 편백찜도 그럭저럭 괜찮다. 딱 메인 둘만 먹을만했다. 그래서 제대로 된 가이세키를 기대하고 이곳에 오면 조금 아쉬울 수 있다.
조식은 종류도 양도 간소하다. 조식의 의미 본연에 충실한 느낌. 하지만 전반적인 만족도는 석식보다는 더욱 좋았던 것 같다. 아침 일찍 일어나 간단하게 조식을 먹고 11시에 체크아웃하면 간단하게 점심을 연이어 먹을 수 있는 정도라 좋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너그럽게 보이는 이유는 우리가 예약했던 디럭스룸을 호텔 측에서 무료로 스위트룸으로 업그레이드해 주었기 때문이다. 국내외 여행 중 수많은 숙소를 방문했지만 이곳만큼 좋았던 곳은 없었던 것 같다. 다다미방에 깔린 잠자리가 딱딱했던 것을 제외하면 신혼여행 때 묵었던 그랜드조선보다도 더욱 좋았다. 잘 묵었습니다.
2. 거제 배말칼국수김밥 본점
배말이 뭔가 했더니 삿갓조개란다. 배말이랑 보말은 같은 것인가 했더니 그건 또 아니란다. 보말은 소라의 일종 같은 고둥이다. 하지만 배말칼국수 홈페이지(#)를 보면 배말과 보말을 다 넣었단다. 어쨌든 이 배말과 특히 거제에서 유명한 톳김밥을 먹고 싶어 찾아갔다. 사실 거제 톳김밥 하면 이곳이 아니라 과거 골목식당에 출연해 솔루션을 받았던 쌤김밥(#)이 더욱 생각났지만 당시엔 쌤김밥을 찾아갈 생각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보니 여기는 영 맛탱이가 가 버렸구나. 안 가길 잘했다.
사설은 접어두고 이곳의 밥 이야기를 하자. 멸치로 육수를 내는 일반적인 칼국수와 달리 배말과 보말을 갈아 넣어 만든 이곳의 칼국수는 시원하고 구수한 맛이 강하다. 곁들여 주문한 꼬막비빔국수는 맛은 있지만 필수 메뉴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간장에 찍어 먹는 독특한 형식의 톳김밥은 무난무난하고 맛있었다. 톳은 보통 꼬득꼬득 씹히는 식감이 강한 편이지만 톳김밥의 톳은 생각보다 부드러운 편이었다. 먹기 좋았다.
3. 거제 한꼬막두꼬막
꼬막 좋아하는 와이프를 위해 찾은 집. 기본 메뉴인 벌교꼬막정찬과 전복숙회, 새우간장찜이 더 나오는 특선꼬막정찬이 있는데 특선을 먹었다가는 배가 터져 숙소가 아니라 병원으로 갈 것 같아서 그냥 일반으로 주문했다.
꼬막무침이 조금 맵지만 특히 맛있었던 반면 양념꼬막은 어느 꼬막집에서 볼 수 있는 흔한 맛이다. 하지만 꼬막 반찬은 이뿐이다. 이 집은 꼬막을 위시하고 있으나 실상은 꼬막 위주의 메뉴가 아니라 꼬막 반찬이 주로 나오는 한정식 정도로 이해해야 맞다. 하지만 지난 추석 때 갔던 대구의 한 꼬막집이 꼬막 위주로 실컷 잘 먹을 수 있어 더욱 만족스러웠던 것 같다. 이쪽이 꼬막에 더욱 진심인 느낌. 내가 꼽는 이곳의 최고 장점은 감태를 준다는 것이다. 요즘 감태 주는 곳 찾기가 힘든데 맛있는 감태 참 잘 먹었다.
4. 통영 뚱보할매김밥
과거 충무김밥은 창렬 메뉴의 대명사 중 하나로 통했지만 전반적인 물가가 오른 지금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뉴가 되었다. 충무김밥은 통영과 거제 지천에 널려 있지만 그래도 그중에 특히 맛있는 곳을 찾고 싶었더랬다. 이곳은 거제가 고향인 장모님으로부터 이곳이 원조라는 정보를 얻어 가 보았다. 가게 내부엔 아주 큰 족자가 걸려 있다. 족자에 빼곡히 적어 놓은 충무김밥과 이 집의 유래가 인상 깊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의 '感謝(감사)합니다'라는 말이 묘하게 눈길을 끌고 시간이 지나도 자꾸 생각난다. 족자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왜 없지?
제대로 된 충무김밥을 먹어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그래도 이곳이 원조라고 해서 그런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오징어, 오뎅무침은 고춧가루 맛이 좀 강하고 평범한 편이지만 특히 섞박지가 시원하고 감칠맛이 나서 좋았다. 같이 곁들여 나오는 된장국은 슴슴하니 간이 약하지만 차려 나온 충무김밥과 궁합이 좋다.
5. 통영 대풍관
통영에서 먹어보고 싶던 메뉴는 해물뚝배기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신선한 굴이 더욱 구미를 당겼다. 대구에서는 잘하는 횟집에서만 스끼다시로 나오는 생굴. 군의관 1년 차 때 방어 잘하는 집에서 처음 맛본 생굴을 시작으로 나이가 들어가며 조금씩 굴 맛을 알게되었다. 그런 굴 맛을 여기서 마음껏 느껴 보고 싶었다. 그래서 날것이 나오는 집이긴 하지만 와이프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들렀다.
신선한 생굴은 아무 조미료 없이도 이미 완성된 음식이다. 무침회 또한 훌륭하다. 먹다 보면 소면을 비비고 싶다. 이 둘은 내가 다 먹고 와이프는 (사진을 못 찍은) 굴전과 굴튀김 위주로 먹었다. 여기서 먹었던 생굴은 이번 여행 나의 베스트 픽이다.
그리고 큰 솥에 열심히 쪄서 나오는 석화찜 폭력적인 비주얼을 자랑한다. 석화찜은 직접 까야하는데 고된 노동이 아닐 수 없다. 과도 크기의 칼로 까는데 처음 해 보니 은근 겁이 나서 잘 깔 수가 없다. 와이프는 칼 없이도 잘 까서 먹던데.
굴밥은 말해 뭐 해. 원재료가 무엇이든 김 넣고 참기름에 간장 비벼서 먹으면 결국 맛은 다 비슷해지는 것 같다. 거제의 꼬막집과는 달리 이곳은 굴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곳이다. 또 생각이 나는구나.
6. 거제 대박난맛집
여행의 마지막날 메뉴 선정이 문제였다. 전날의 생굴을 마지막으로 날것은 더 이상 안 되고, 어설프게 해물라면을 먹자니 뭔가 가성비가 안 맞는 것 같고. 익힌 해산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을 하다가 그냥 적당한 해물칼국수를 먹자 하고 정해서 나름 리뷰 수가 많은 곳을 찾아 들렀다. 외관은 관광지에 더러 있는 그저 그런 집 같지만 20년 이상 지속되어 온 나름 역사 있는 집이다. 2022년부터는 인스타그램도 운영하는데 들어가 보면 그 사진이 그 사진이다.
저녁을 안 먹을 생각으로 커플세트 C에 도전했다. 큰 문어와 홍합 바지락이 아낌없이 들어간 해물칼국수는 다 아는 그런 맛이지만 훌륭하기 그지없다. 의외로 낙지볶음이 기대했던 것보단 맛있었다. 보이는 것보다 그다지 맵지 않다. 충무김밥도 같이 나오는데 여기 충무김밥은 그저 그랬다. 충무김밥은 역시 전문점에서 먹어야 한다는 것을 새로 알았다. 하지만 이렇게 먹고도 대구로 돌아가는 길에 분식집 들러서 저녁을 또 먹었다. 배뻥
7. 번외 - 바람의 핫도그
거제에 여러 지점이 있는 바람의 핫도그. 통영에도 한 곳 있었는데 없어졌더라. 가격대가 조금 있는 편인데 끼워져 있는 소시지가 굵고 튼실해서 좋았다. 둘째 날 처음 먹고 하루에 하나씩 먹어보자 했는데 동선이 안 맞거나 해서 결국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먹질 못했다.
이번 여행 동안 해물 위주로 잘 먹었다. 이번 포스트 쓰면서 고민이 하나 생겼는데 과연 음식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하는가? SNS에 올리는 갬성 사진처럼 찍으면 블로그에 올리기 뭣할 것 같고, 그렇다고 대충 찍자니 뭔가 안 이뻐 보이고... 저기 칼국수 사진은 너무 대충 찍긴 했다. 모든 사진을 매번 각 잡고 찍는 것도 힘들고 또 보정은 보정대로 힘들다. 이번 사진들도 라이트룸으로 슬쩍 만져 주긴 했는데 그다지 빡세게 보정을 하지는 않았다. 어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