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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의대 연극반 앙상블 57회 공연 팜플렛 제작노트

'처음부터 일을 벌리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이라는 생각이 엄청 들었던 작업이었다.


정말 디자인은 순수하게 취미로 하고 싶고 다음 22회 프렐류드 공연에 쓸 팜플렛도 그런 의미에서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이것저것 알아보고 생각도 많이 하고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가고 있는 중인데 이렇게 며칠 안에 완성물을 내야 하는 작업은 정말이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작업이 기한이 생기고 최소한의 기대치를 만족시켜야 한다고 생각을 하면 그건 더이상 취미가 아니라 일이 된다. 나는 그동안 정말 내가 좋아서 툴을 만졌지 누군가의 하청이 떨어져서 툴을 만진 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다른 동아리 팜플렛 만드는 일은 정말 상상도 안했는데 어찌어찌 생각이 닿아 저쪽에서 먼저 의뢰가 들어왔다. 마감기한이 3일에서 4일 정도로 급하게 팜플렛을 제작해야 하는데 항상 그렇지만 이쪽에서 팜플렛을 모두 제작해 가면 그런 쪽에서의 비용이 절감되기 때문에 나에게 부탁이 왔고 이걸 거절해야하나 말아야 하다가 그냥 승낙했다. 예전부터 이야기를 했지만 나는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페이를 받을 수도 없고 페이를 받기도 싫고 그냥 비싼 밥 얻어 먹는 조건으로 페이 이야기는 끝이 났다. 그 전에 의과대학 동창회에서 프렐류드 공연이 있을 줄 알았더라면 거절하고 그냥 푹 쉬다가 연습을 나갔을텐데 그 부분을 미처 캐치하지 못해 결국 두 일 다 떠맡게 되는 불상사가 이루어지고 말았다.

때문에 디자인은 정말이지 날조의 극을 치닫는다. 앙상블은 예전부터 팜플렛을 흑백으로 뽑아서 망정이지 컬러인쇄였으면 난 지금쯤 망했다. 흑백 인쇄를 염두에 두었기에 오브젝트의 색 배합과 균형에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다.

font :: saru's Flower Dings, Haan Coolajazz B, Haan Somang M, 윤고딕 360; 330,
WC Sold Out A Bta, Nymphette, Agency FB


그간 내가 해 오던 작업과는 방향이 많이 달랐다. 좀 모던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 디자인을 많이 보아 왔고 또 그런 쪽으로 많이 구현을 하려고 노력하는 나이기에 이번 작업에도 그런 디자인을 도입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은 했지만 공연 제목을 보고는 그런 생각을 싹 접었다. 내가 디자인을 하면서 바탕체를 쓸 줄이야. 충분히 궁상을 떨고 있는 제목만큼 디자인도 같이 궁상떨고 촌스럽게 가야한다고 생각을 했다.

공연을 하면 대부분 스폰을 따는데 웬만한 곳에서는 5만원 정도까지만 스폰을 해 준다. 하지만 내가 팜플렛을 만들면서 절감되는 금액이 20만원이라 내가 이 공연의 가장 큰 스폰서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팜플렛에 이름을 넣어도 좋다고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나는 그렇게 나를 앞장세워서 뽐내고 싶어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그냥 뒤에서 묵묵히 일조하는 스타일이기에 내 이름은 한글자도 넣지 않았다. 다만 항상 그러하듯이 내 로고 중 일부를 표지에 심었다. 질 보면 꽃 중에 꽃이 아닌 놈이 하나 있다. 항상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날인인 듯하다.


그리고선 본문에서는 더 추가된 폰트가 없다-_-; 최대한 적은 소스를 많이 활용하여 소스를 고르는데 드는 시간을 최대한 줄였다. 그리고 작업 전반적으로 뭔가 틀을 잘 맞추고 깔끔하게 보이는 데 필요한 작업을 거의 하지 않았다. 심심하면 심심한 대로 그냥 그대로 갔다. 우리가 쓰는 팜플렛은 아니니까 하는 생각이 짙게 깔려 있는 불순한 사상의 결과였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고 그러고 그러지 않고의 차이를 보통 사람들은 잘 느낄 수 없다. 이상한 쪽으로 노하우가 생기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본문 디자인이 문제였는데 처음에는 진짜 유치원생 수준의 디자인을 했다. 만들고 한 번 봤는데 나는 무슨 도화지에 색종이를 잘라서 붙인 것 같았다. 그렇게 프로토타입을 만들어서 한 번 보라고 줬는데 굉장히 만족해하길래 그걸로 정말 괜찮나 싶어서 그냥 그대로 가려고 했지만 도저히 내 자신이 그 수준의 디자인을 허락할 수가 없어서-_- 디자인 리뉴얼을 했다. 물론 시간이 더 많았다면 더욱 양질의 디자인을 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흑백으로 나오는데+그정도의 디자인에도 그렇게 만족을 하는데 더 공을 들여봐야 그다지 얻는 반응의 향상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조금만 더 업그레이드를 시키는 수준에서 마무리를 했다. 저쪽에서 본문 내용을 많이 조달해 주었기 때문에 생각보다는 본문을 채우는 데 시간이 적게 걸렸지만 가장 많이 시간을 소요한 부분은 아마 뒷부분의 스폰서 부분이 아닐까 싶다. 작년 팜플렛을 보니 인쇄소에서 전부 다 작업을 한 듯한데 그쪽 파일도 어떻게 공수해 올 방법이 없고 해서 나도 그냥 처음부터 다 만들었다. 스폰서마다 모양이 들쭉날쭉이고 그런게 좀 싫어서 그냥 내 방식대로 거의 일괄적으로 디자인을 적용했다. 덕분에 작업시간도 줄고 좋았지만 우리 팜플렛에 저런 디자인을 쓰라고 하면 죽어도 안한다. 의뢰를 받아서 만드는것 자체가 상업적이라면 그러한 냄새를 풍기는 일이지만 정말 스폰서 페이지 만들 때는 내가 진짜 상업디자인 하는 줄 알았다. 이건 뭔가 아닌데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다.


어쨌든 4일만에 없는 시간을 쪼개어 틈틈히 만들었고 확실히 이런 디자인을 하려면 그 해상도에 맞는 소스가 많이 필요한데 그런 것이 없어서 표현의 폭이 굉장히 좁은 것이 아쉽다. 뭐 그걸로 밥벌어먹을것도 아닌데 더 욕심 부릴 필요는 있나 싶다. 어쨌든 이번 작업의 의의는 지난 공연때 잠깐 했던 팜플렛 작업과 더불어 실제 인쇄되어 나오는 결과물의 구성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되었다는 점? 이렇게 적당히 만들어 주어도 저쪽에서는 정말 폭발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제발 외부에서의 디자인 요청은 이번 일로 끝났으면 좋겠고 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내가 전공자처럼 디자인을 잘 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번 팜플렛도 나중에 보면 부끄러워 죽을것 같다.

아 다음에는 이런 디자인 안해야지.
Son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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