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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울」

 

 

 

 

"모든 순간이 다 꽃봉오리인 것을"

- 정현종 -

 

1.

<소울>이 주는 메시지는 너무나도 명확하다. 우리 삶을 구성하는 매 순간은 하나하나 모두 소중한 것이다. 좀 더 덧붙여 말하자면, 우리는 특정한 상태나 순간을 목표로 삼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고 있지만 그러한 것은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다. 그러한 목표를 달성한다고 우리 인생이 끝나는 것 또한 아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하지만, 그렇게 힘겹게 달성한 목표가 영원할 수도 없다. 그러한 목표에 이르는 과정, 그 과정 속에서 경험하는 모든 성공과 실패, 때로는 맛있는 음식 한 입과 함께 잠깐 한숨 돌리는 아주 작은 순간까지 모두 우리 삶을 구성하는 귀한 순간이며 그 어느 것 하나 가치 없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개봉한 지 시간이 조금 지난 지금도 '어른을 위한 영화'라고, 어린이들에게 와닿기는 다소 힘든 영화라고들 한다. 그러나 곱씹어 생각해 보면 이 영화는 친절하게도 혹여나 우리가 이런 소중한 메시지를 놓칠까 봐 영화 전반에 걸쳐서 세 번이나 암시를 해 놓았다. 때문에 <소울>은 누구에게나 그다지 어렵지 않은 영화다.

 

 

주인공 '조'가 이 곡을 연주하며 회상하는 장면, 지상에서의 삶을 체험한 후 완성된 ‘22’의 지구 통행증,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첫 공연 후 도로시아가 조에게 이야기 해 주었던 바다 이야기는 공통적으로 '소중한 우리의 삶 전체'를 가리키고 있다. 은유가 얼마나 잦던지 가끔은 좀 노골적인 것 같다는 느낌까지 든다.

 

더불어 지금 나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욱 더 좋은 것을 갈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한다. 도로시아의 말처럼 나는 이미 바다에 있으면서, 바다인 줄도 모르고 바다에 가고 싶어 하는 어리석은 한 마리 물고기가 아닐까? 바다는 잔잔하고 영롱하게 빛날 때도 있지만, 폭풍우가 몰아칠 때는 무시무시한 파도가 치기도 한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바다요, 우리를 힘들게 하는 폭풍우는 지나갈 것이며, 폭풍우를 견뎌낼 우리는 여전히 바다에 있지 아니할까? 모든 것은 다 생각하고 마음먹기 나름인 것 같다.

 

 

1-1.

 

한가지 더. 영화의 주된 플롯은 지상으로 내려가는 것을 거부하여 수천 년 동안 수많은 멘토들에게 말썽만 피우던 '22'를, 지상으로 내려보내기 위해 필요한 마지막 한 조각인 불꽃이라는 열정을 찾기 위한 여정이다. 앞서 말했듯 이 영화의 주제는 그런 우리 삶의 '불꽃' 따위가 아니라 '우리 삶' 자체이지만, 난 영화를 보고 난 후 이 부분이 자꾸만 떠올랐다. 영화의 초반부 도로시아 윌리엄스의 밴드에서 합을 맞추며 피아노를 연주하던 조는 점차 자신만의 연주에 빠져들게 되는데... 그때 무아지경의 세계(원문은 'In The Zone')로 빠지는 연출이 처음으로 나온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쓸데없는 부분에서 울컥할 때가 많아서 문제 아닌 문제 이긴 한데, 어쨌든 <소울>에서 나의 울컥 포인트는 이 부분이었다. 단순히 피아노 선율이 너무나도 아름답다는 이유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황홀함을 넘어 행복한 표정으로 연주를 하는 조를 보면서 한낱 영화 캐릭터이지만 정말 부럽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내 삶의 불꽃은 과연 무엇일까? 작년부터 만들어 온 많은 취밋거리? 퇴근하는 차에서 음악 듣기? 아니면 지금처럼 글 쓰는 것? 물론 그것들이 사무치도록 황홀할 때도 있지만 가끔은 무엇이 나의 동기인지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 역설적으로 '22'의 불꽃은 삶 자체였듯 우리의 삶이 모두 소중하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확실한 원동력을 찾고 싶었나 보다. 물론 불꽃이 사시사철 활활 타오를 수는 없겠지만, 이따금씩 타오르는 불꽃이라도 우리의 삶을 보다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해 본다.

 

 

2.

큰 위기가 없어서 다소 잔잔한 호흡. 명확한 기승전결을 원한다면, 혹은 그것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소울>은 다소 단조롭게 설교만 하는 영화로 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같은 감독의 전작 <인사이드 아웃>과 비견된다. 서로 비슷한 결의 주제를 말하며 성장이라는 큰 틀을 내포하고 있지만, <인사이드 아웃>은 기승전결이 다소 명확하다. 인물의 감정 체계가 무너질 정도의 위기 속에서 추억의 대명사인 빙봉이 죽음을 맞이(정확하게 말하면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며 잊혀짐)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소울>에서의 가장 큰 위기는 '22'가 타락해 길을 잃은 영혼이 된 일 정도다. 이외에는 22가 조의 몸에 들어간 것? 하지만 그런 문제들 자체도 금방 해결될 것만 같은 사소한 것들이었고 실제로도 간단히 해결되었다. 이야기의 흐름 자체가 역동적이지는 않아 그냥 그렇네 싶은 느낌이 들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감정을 집중으로 조명한 <인사이드 아웃>보다는, 인생 전반을 조명하는 <소울> 쪽이 생각할 거리도 많고 영화를 보고 난 후의 여운이 좀 더 남는 것 같다.

 

 

3.

사실 그런 잔잔한 흐름 속에서 갖가지 연출이 이목을 효과적으로 잘 끌었기 때문에 그다지 심심할 틈이 없었다. 앞서 말한 무아지경의 세계도 당연히 좋은 부분이다. 하지만 특히 이런 류의 잔잔한 영화, 더불어 저세상이라는 추상적인 배경과 일렉트로니카는 궁합이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멋진 조화를 보이고 있어서 좋았음. 한때 음반까지 사 모을 정도로 일렉트로니카라는 장르를 좋아했던 나로서는 '태어나기 전 세상(the great before. the great beyond와 쌍을 이루는 원문 네이밍이 참 마음에 든다.)' 파트는 귀가 즐겁지 아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근두근하는 기분으로 보았다. 더불어 그런 음악이 씌워진 영혼의 세계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묘사되어 있다. 특히 피카소의 인물화를 채용하여 고차원적임을 표현한 제리와 테리가 정말 마음에 들었다. 또한 몸소 어린 영혼들의 놀이기구가 되어 주는 제리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느꼈는데... 아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겠지만 먼 옛날 해피토크라는 아동 영어회화교재에서의 <The Purple Monster>(#)가 보였다. 물론 의도 할 리 없었겠지만 나에겐 추억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음.

 

 

4.

여튼 인사이드 아웃에 이어 감독 피트 닥터는 픽사 안에서 어른을 위한 영화를 연이어 만들어내고 있다. 생각할 거리를 이렇게 쉬운 언어로 잘 전달해 줌에 감사함을 느낀다. 다만 이런 진중한 이야기를 어린이들이 잘 받아들이기엔 조금 무리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아주 조금 해 본다. 하지만 계속 말하듯 <소울>은 참 쉬운 영화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다음 작품 또한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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