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난자에 앞서 조금 해 보는 스위치2 이야기. 거치형과 휴대형의 결합으로 새 시대를 연 닌텐도 스위치의 후속 기기가 8년 만에 등장했다. '슈퍼 닌텐도 스위치'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쪽을 내심 기대했건만 보다 직관적인 넘버링을 택했다. 발매 후 줄곧 독모드로만 쓰다 보니 아직 스위치2에서 느껴지는 경험적인 차이는 크지 않고, 아직까진 그냥 화질이나 프레임이 좀 더 좋네 정도로 그친다. 스위치2의 스펙 업과 함께 전작보다 2배 가까이 오른 가격이 꽤나 인상적이다. 모바일로 게이밍의 주요 무대가 옮겨가고 있는 가운데, 이 높은 가격과 휴대용 콘솔의 파이 저하로 아동-청소년 세대가 닌텐도 콘솔을 접하기 어려워지는 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DS-3DS 시절에는 기기가 다소 저렴했던지라 너도나도 다들 NDS 하나쯤은 기본 소양이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근 40년 전 게임보이의 첫 발매가격이 12,500엔(#)이었던 사실을 생각하면 현재 스위치2의 가격은 그다지 비싸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스위치2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하고. 스위치 2에서 처음으로 접한 타이틀은 번들이었던 <마리오 카트 월드>였다. 하지만 레이싱을 주로 즐겨하진 않으니 그냥 찍먹 정도만. 반면 이 <동키콩 바난자>는 더욱 진득하게 플레이하고 바닥까지 싹싹 긁어먹었더랬다. 바난자는 최근 닌텐도의 여러 오픈월드 타이틀과 비교하면 다소 짧은 분량이다. 하지만 클리어까지 꽤 오래 걸렸던 이유는 아무래도 현생이 바쁜지라... 근무+육아 콤보 때문에 작정하지 않으면 느긋하게 플레이할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클리어 이후 리뷰를 글로 옮기기까지도 텀이 좀 있는데 이보다 더 늦어지면 그나마 남아 있는 생각들도 다 휘발될 것 같다는 생각에 부랴부랴 써 본다.
PROS
주변의 모든 것을 부수고 뜯고 던져라
<동키콩 바난자>의 지형 시스템은 <슈퍼 마리오 오디세이>에서 먼저 선보였던 복셀 기술의 확장이다. 주위 지형을 부수고 뜯고 던짐으로써 상황에 따라 필요에 맞게 활용할 수 있다. 특히 지형의 단단한 정도에 따라 부술 때 나타나는 세밀한 차이, 그리고 파편의 단단한 정도를 잘 활용해야 하는 점이 참 재밌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흙 지형이 주는 탐색의 자유도였다. 뜯어 던져 이어 붙이면 지형을 새로이 만들어낼 수 있어 멀리 떨어진 곳도 미리 건너가 볼 수 있고, 미끌거리는 벽에 붙이면 어떡해서든지 벽을 타고 올라갈 수도 있다. 보통 그런 장소들은 올라갈 필요가 없든지, 추후 다른 능력을 얻으면 결국 필연적으로 가게 되는 장소다. 하지만 나 같은 탐색충에겐 눈앞에 보이는 지형을 어떻게든 먼저 가 보며 직성을 푸는 재미가 아주 쏠쏠했다. 하지만 바난자 변신 중 주위 지형을 파괴하거나 활용하는 기믹이 가미된 건 콩 그리고 코끼리 바난자 둘 뿐이라 조금 아쉽다.
자유도
시스템적인 자유도를 빼놓을 수 없다. 복셀 기술을 활용해 플레이어가 길을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다. 지형을 부수어 가로질러 갈 수도, 흙을 이어붙여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다음 지형으로 건너뛸 수도 있다. 또한 진행과정을 건너뛰는 것 또한 자유롭다. 진행에 필요한 최소 조건만 달성하면 바로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것은 물론, 바난자 변신을 잘 이용한다면 구간 점프도 가능하다. 타조 바난자로 빙하의 계층 전체를 건너뛰는 건 이미 유명하다. 재밌는 건 제작진이 이런 스킵을 다 염두에 두고 상황에 맞게 폴린의 대사를 곳곳에 심어 놓았다는 점이다. 더 나아가 0 바나몬드 엔딩 또한 가능하다. 제작 비화에 따르면 파괴가 주 컨셉이다 보니 이런 자유도엔 별다른 제약을 걸지 않았다고. 난 하나하나 다 찾고 달성해 가며 리스트가 채워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이지만 0 바나몬드 클리어는 워낙 신박하기에 여유가 된다면 한번 해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폴린
이 게임의 알파와 오메가인 폴린. 상황에 따른 추임새, 별장에서의 대화, 컷씬에서의 수많은 대사 그리고 바난자 변신 테마에서의 인공어(gibberish lyrics라고 한다)까지. 폴린이 있기에 이 게임의 흥겨운 분위기가 더욱 살아난다. 특히 원문 성우와 음색이 그다지 차이 나지 않으면서도 더욱 활기찬 느낌으로 연기한 한국어 성우 쪽이 폴린의 성격과 더 궁합이 맞는 듯하다. DK는 그저 옆에서 거들 뿐인 <동키콩 바난자>의 주된 플롯은 '폴린의 성장기'이다. 사실 이 폴린의 존재는 개발 초기엔 없었고, 바난자 변신이 먼저, 그 바난자 변신을 뒷받침할 음악적인 요소, 그리고 음악을 뒷받침할 요소를 찾다 보니 폴린이 들어가게 되었단다. 폴린이 없는 바난자는 엄청 밋밋했을 것 같다. 더불어 이런 생각도 든다. 이토록 존재감 가득한 폴린이 앞으로의 동키콩 시리즈에서 빠진다는 것은 과연 상상이나 갈까?
이외에는 빛을 주요 기믹으로 삼는 흰 사막인 사막의 계층 정도가 꽤 인상 깊었다는 것. 다양한 매력의 캐릭터들이 이곳저곳 잘 포진해 있다는 점. 그리고 탐색의 편의성이 좋았다는 것 정도. 핸드 슬랩 레이더가 탐색의 재미를 떨어트린다는 평도 있지만 어떻게 레이더 없이 꽁꽁 숨겨 놓은 오브젝트들을 찾으라고...
CONS
선형적인 / 짧은 구성
진행도에 따라 하부 계층이 열리는 선형적인 구성은 넓은 공간을 자유로이 탐색하는 오픈월드의 재미를 반감시킨다. 오픈월드의 메인이 되는 지형과 나뉜 별개의 공간을 부여하더라도 지금의 세부 스테이지가 아닌 하나의 던전처럼 제공을 했더라면 진행의 자율성 측면에서 좀 더 좋았을 것 같다. 짧은 구성 또한 아쉽다. 전체 16개의 계층 중 5개 계층이 잠시 거쳐 가는 거점 개념이다. 바나몬드도 별로 없고 심지어는 화석마저 없을 때도 있다. 그리고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리조트 / 레이스장 / 식품 공장의 계층은 왜 그 위치에 끼어 있는지, 그리고 왜 있는지 잘 모르겠다...
쉬운 난이도
쉽다. 너무 쉽다. 적들의 공략 포인트가 너무나도 명확해서 맞아 죽을 일이 잘 없다. 오히려 배틀보단 낙사의 위험이 훨씬 높은데 이것도 풍선을 자주 제공해 주니 낙사는 정말 보기 힘들다. 보스전 패턴도 대부분은 쉬운 편이며 특히 콩 바난자의 파괴력은 보스전을 더욱 쉽게 만든다. 그래서 콩 바난자는 콘크리트를 부숴야 할 때가 아니면 가급적 봉인했고, 최종 보스인 킹크루루까지는 라이프 업 없이 클리어했다.
그래도 1회차 이후의 컨텐츠는 확실히 난이도가 있다. 더럽게 어렵기보단 재밌게 어렵다. 배틀 러시는 제한시간이 빠듯한 점이, 보스러시는 강화된 패턴이 주된 공략 포인트다. 배틀 러시 쪽이 좀 더 어려웠다. 바난자 수련은 얼룩말>>>>타조>뱀>코끼리>콩 순으로 어려웠고 조금 고생한 얼룩말 빼고는 나머지는 다 쉬웠다. 마지막 스테이지인 하모닐의 폐 안도 의도대로 어렵긴 했는데 몇 가지 공략 포인트만 알면 난이도가 급감한다. 아무것도 모를 때의 가장 첫 코스, 타조 바난자로 활강할 때가 가장 막막했던 것 같다.
이외에는 활용도가 다소 떨어지는 바난자 변신 정도. 진행도와 함께 DK의 스펙도 탄탄해져 가는 탓에 바난자 변신 없이도 충분하다. 바난자 변신의 이동 기믹이 필요한 특정 구간을 제외하면 그냥 변신하지 않은 상태가 플레이하기 훨씬 편했다. 그리고 절벽이나 천장 로드에서 가끔 카메라 회전과 더불어 조작이 불편해질 때가 조금 거슬렸다.
TRIVIA
닌텐도는 새 모델링으로 DK의 호감도 상승을 의도했다. 바뀌기 전도, 바뀐 후도 좋아 보인다. 그래도 이전의 날카로운 이미지가 사라진 건 못내 아쉽다. 하지만 새 시대에는 새 동키콩이 필요하다는 닌텐도의 판단 아래 우리는 새 DK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다만 이 게임 한정으로 생각해 본다면... 폴린이 시종일관 부드럽게 분위기를 잘 풀어주는 탓에 구태여 DK를 얼빵해 보이게 하면서까지 부드러운 이미지를 심어 줄 필요까진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과거작에 대한 오마주가 가득한 작품이지만 난 동키콩 자체는 이 작품이 처음인지라 그런 오마쥬 요소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다. 하지만 노골적인 모티브 요소는 뉴비가 봐도 잘 알 수 있다. 초대작의 시안/마젠타 등의 네온색상이 게임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든가, 동키콩 컨트리 시리즈 느낌이 물씬 풍기는 챌린지 미션이라든가. 거듭되는 슈퍼 마리오 시리즈 속에서 누적되는 오마주에 즐거워하는 나처럼 동키콩 시리즈의 오랜 팬들은 이번작을 통해 똑같은 즐거움을 마음껏 누렸으리라 믿는다.
RECORDS
<동키콩 바난자>도 좋은 음악이 포진한 게임이다. 애초에 게임의 핵심 요소에 음악이 포함된 게임이다. 하지만 그런 것치곤 플레이 후 뇌리에 남는 음악은 또 잘 없다. 필드 bgm이 별로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오버월드 테마인 저수지의 계층 bgm이 임팩트가 약하다. 오히려 프롤로그 격의 잉곳 섬 bgm이 힙한 감성에 좀 더 뇌리에 남는 듯하다. 그 와중 테마곡 'Breaking Through'는 정말 좋다. 이 곡을 돋보이기 위해 필드 bgm의 힘을 뺐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곡인데...
Breaking Through (Heart of Gold)
DK와 폴린의 여정을 노래하는 곡. 청량하게 내지르는 제니 키드(#)의 보컬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마디세이의 'Jump Up, Super Star(#)'는 게임할 때만 듣고는 말았는데 이 곡은 일부러 몇 번 더 찾아 들었다.
언덕의 계층 : 쨍글루야 마을
무심한듯한 표정을 한 채 이곳저곳에서 DK 일행을 도와주는 친절한 친구들. 1회성으로 활용되고 버려지는 게 참 아깝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캐릭터 디자인이었다. 쨍글루야야 언젠가는 다시 만나자... 이 bgm은 지역에 따른 배리에이션(#)이 있어서 더 좋았다.
갈림길의 계층
얼핏 들었을 때 주 멜로디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느낌이라 한동안 별장 레코드 음악으로 설정해 뒀다. 하지만 bgm이나 레코드 음악으로 듣다가 나중에 OST로 다시 들어 보니 뒤쪽에 깔리는 신비한 느낌의 전자음이 선명히 들리던데 처음 받았던 편안한 감상과는 다른 느낌이 좀 깼다. 빙하/원시림 배리에이션도 있는데 원시림 쪽이 좀 더 듣기 좋았던 것 같다.
바난자 테마
바난자 테마는 정말 좋다. 기획 단계에서 구상된 음악적인 요소를 토대로 게임 컨셉을 쌓아 올렸기에 좋지 않을 수 없는 곡들ㅇ이다. 앞서 말한 폴린 목소리의 인공어 가사가 음악과 정말 찰떡이다. 콩, 타조 바난자 테마가 특히 좋았다.
이외에는 식품 공장의 계층에서 들을 수 있는 대부분의 bgm이 좋았다. 이것도 한동안 별장 레코드 음악으로 틀어 놓았다.
최근 DLC가 나왔다지만 이 타이틀로 로그라이크를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그다지 매력 있지는 않다. 컨텐츠에 비해 가격도 비싸다고 느껴 아직은 구매하지 않음. 나중에 할 게 없다면 플레이를 해 볼지도 모르겠으나 이제 막 <레전즈 Z-A>도 나온 데다 클리어하지 못하고 쌓아 놓은 NSW 타이틀이 4개나 되는지라 DLC는 이대로 떠나보내야 할 듯하다. 그래도 <동키콩 바난자> 같은 가볍게 즐기기 좋은 타이틀로 스위치2의 처음을 기분 좋게 시작한 듯하다. 앞으로 내가 게임을 얼마나 열심히 플레이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좋은 타이틀을 되도록 많이 접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