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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의관 예비군 1년차 후기

 

군의관 예비군 후기

 
대위 군의관 전역으로부터 1년 2개월. 현역 복무 때도 군인 티를 내기 싫어 '나는 공무원이다'라는 마인드로 3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전역 이후에 맛보는 해방감이 너무나도 달콤했다. 이후 군대 시절은 그렇게 내게서 잊히는 듯했지만 대한민국 예비역에게는 예비군 훈련이라는 슬픈 과정이 있지. 그간 예비군은 뭐가 필요한지 궁금해서 조금씩 찾아만 보고 있었다가 6월 초중순 예비군 통지서를 받고 나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부랴부랴 일정과 준비물 등을 자세히 알아보았다. 나름 잘 준비해서 2박 3일 동안 큰 문제는 없이 잘 다녀왔는데 훈련 중에도 훈련 후에도 드는 생각은 예비군 정말 싫다... 어쨌든 이래저래 겪고 느낀 것이 있어 자유롭게 기술해 본다.
 
 
1. 비효율성
이건 현역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군대는 참 비효율적인 집단이다. 이런 답답함을 2박 3일 동안 차출되어 숙박을 함께 해결해야 하는 동원예비군훈련 내내 다시 한번 느꼈다. 누군가는 이 훈련을 위해 며칠간 생업을 포기하고 와야 하는 것 치고는 보상이 너무 짜다(#). 여비지급까지 최소 2주 걸린대서 아직은 못 받았는데 받아 보아도 얼마 안 될 듯. 이 나라는 민간인도 법제 하에 가둬놓고 강제로 부려먹으면서 보상도 안 해주는, 그야말로 노예 취급하는 무지막지한 나라다. 근데 고위급 장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도 별로 대우 못 받고 지내는 똑같은 노예 신세임을 알기 때문에 별 말은 못 하겠다. 어쨌든 나는 월급 받으며 일하는 입장이니 별 불만은 없었지만 만약 내가 자영업자였으면 3일 내내 불만만 가득했을 것 같다.
 
끊임없이 드는 또 한 가지 생각은 이것이 꼭 동원을 해서 2박을 해야 하는 일정인가? 부대 내 체류시간은  2박 3일 중 첫째 날 입소가 13시, 마지막날 퇴소가 17시로 총 52시간 정도이다. 하지만 훈련 수료증에 찍히는 훈련 시간은 28시간이다. 이건 스케줄 상 짜여진 훈련 시간만을 의미하는 것이고, 실상은 훈련 사이의 긴 대기시간을 가지치기 하고 난 후의 실제 훈련시간은 20시간에 훨씬 못 미친다. 3일간 곰곰이 생각을 해 보건대 굳이 동원까지 하는 이유는 훈련인원 관리의 용이성으로 보인다. 먼 거리 인원의 출퇴근이 불가능하고, 출퇴근 관리의 불편함 등으로 결국 훈련받는 인원이 쓸데없는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데 과연 이게 맞나? 대기 등으로 낭비되는 시간 및 아침 점심 저녁 꼬박꼬박 주고 이상한 곳에서 재우면서 소비되는 재원 생각하면 그냥 3일간 출퇴근하며 훈련해도 충분히 효율적일 것인데... 이 집단에 상식과 효율을 기대하는 내가 어리석은 것 같다.
 
 
2. 훈련 과정
나는 이전에 복무했던 비행단으로 다시 소집되어서 예비군 훈련을 끝냈다. 부대 지리는 잘 알고 있어서 익숙한 건 좋았는데 있었던 부대 또 들어가려니 기분이 영... 모르는 부대 처음 들어가면 적응하느라 정신이라도 팔릴 텐데 여기선 그런 게 없으니. 과거의 향수보단 이런 델 또 들어오다니 하는 꿀꿀함에 잠긴 3일이었다. 그래도 예전에 근무했던 항의전대 잠깐 갈 일이 있었는데 거기서 친했던 주무관님들 몇 분 만났던 건 조금 좋았다. 잘 지내고들 계시네.
 
장교끼리 모여서 따로 훈련받는다던 군의관 예비군 후기도 있었고 군의관 동기가 작전사로 예비군을 갔더니 군의관만 6명이 모여있더라 하더라. 나도 군의관들끼리 모여서 훈련하려나 싶었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다. 예비역 장교나 부사관이라도 훈련은 같은 장소에서 같은 내용으로 일반 사병 예비군과 똑같이 진행되었다. 심지어 마지막날은 같은 역종끼리 받는 전문화 교육은 의무병 출신과 함께 그냥 ‘의무’로 분류되어 같이 교육을 받으러 갔다. 나는 현역시절 K2 소총은 쏴 본 적이 없고 훈련생 때 K5, 임관 후에는 CAL-38만 잡아 봤었다. 그래서 처음 보는 소총사격이 과연 가능할까 내심 걱정했지만 훈련기간 내내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바람에 사격이고 뭐고 야외훈련은 모두 취소가 되어 결국은 쏴 볼 일이 없게 되었다. 몸을 덜 움직이는 건 좋은데 안 그래도 긴 대기시간이 더욱 길어져서 좀 답답했다.
 
앞서 말한 그 긴 대기시간은 어떻게 보낼까? 대부분은 책 가져가서 읽더라. 나도 두권 정도 들고 가서 열심히 읽었는데 하루 한 권이 목표였으나 실상은 한 권 조금 더 읽는 정도였다. 그전에 휴대폰 반납을 안 해서 그다지 지루하지 않았다. 요즘 군대는 병사들도 휴대폰을 24시간 사용하는 좋은 환경이다. 보안 문제만 잘 해결된다면 이것이 훨씬 옳은 방향 같다. 갇혀 있는 괴로움을 다른 방식으로 환기시킬 수 있고 세상과의 단절도 해결하며 무엇보다 군 내 사건사고 및 비리가 쉬쉬 되지 않고 바르고 빠르게 고발되는 것이 참 좋다. 마침 예비군도 휴대폰 허용 시범사업 중이라 다행스럽게도! 훈련 내내 반납 없이 휴대폰을 사용할 수 있었다. 이전 군의관 예비군 후기들을 에서 하나같이 토로하는 가장 큰 어려움은 대기시간 중 지루함을 견뎌내는 자신과의 싸움이었는데 이런 수고를 피해서 좋았다.
 
예비군 숙소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았더랬다. 예전 청주 항의원에 비행군의관 훈련을 받으러 간 적이 있었는데 거기 숙소가 정말 최악이었다. 평생 본 것보다 더욱 많은, 그리고 앞으로 평생 볼 그리마를 거기서 다 봤다. 베개로 살짝 쳐도 죽을 정도로 그리마가 잘 죽는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역설적이지만 감사하게도 비행군의관 훈련 3주 동안 벌레에 대한 내성이 생겼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벌레 가득한 환경은 썩 달갑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도 벌레가 가득했다. 특히 이불에 좁쌀만 한 거미가 엄청 많았다. 죽이고 죽여도 어디서 다시 나타나는 건지. 무엇보다 침대 퀄리티가 너무 메롱이었다. 모기도 많아 숙면은 절대로 불가능한 곳이었다.
 
밥은 병사 식당에서 먹었다. 군의관 복무 시절 점차 병사 복지에 박차를 가하는 군 분위기 덕에 병사식당이 간부식당보다 더 질이 좋다는 소문이 있었다. 특히 이곳 비행단은 풀무원 등 외부업체가 출입하며 식단을 관리한다는 것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며 병사 복지에 열을 올렸던 곳이다. 그런 홍보가 무색하게도... 실제로 경험해 본 병사식당은 소문만큼 퀄리티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대전의무학교에서 먹었던 짬밥보다 아주 조금 좋은 정도? BX에 병사들이 늘 구름처럼 몰려드는 이유는 뭔가 아쉬운 밥 퀄리티 때문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3일 내내 간부식당 마려웠다. 간부식당은 자율배식에 정말 맛있었는데. 특히 간부식당 제육과 감자탕에는 감동이 있었다.
 
 
3. 준비물
보통은 인터넷에서 본 대로 잘 챙겨서 가면 된다. 없으면 BX에서 대충 구해서 때워도 된다. 아래는 몇 가지 코멘트.

챙겨서 좋았던 것
- 헤어드라이기 : 의외로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드라이기가 몇 개 있었지만 어쨌든 머리 잘 말릴 수 있어서 좋았다.
- 보조배터리 : 두 개 챙겼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 썼다. 하나만 있어도 충분.
- 책 : 올해 부족한 독서량 여기서 챙김. 하지만 숙소 내 휴게실에 책이 꽤 많아서 이곳 책 읽어도 좋았을 것 같다.
- 이어플러그 : 22시 점호시간 지나도 휴게실에서 야식 먹고 떠들고 놀고 시종일관 문 꽝꽝 닫히는 소리에 잠을 청하기 참 힘들다. 이어플러그로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으니 숙면에 도움이 되긴 했지… 만 모기 때문에 실패. 둘째 날은 새벽에 한 번 깼는데 귀에 꽂았던 왼쪽 이어플러그가 사라져 있었다. 조금 찾다가 없어서 관뒀는데 아침에 보니 먼발치 바닥에서 뒹굴고 있었다. 자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못 챙겼는데 다음부터는 챙기면 좋을 것
- 멀티탭 : 콘센트가 몇 개 없는 숙소 생활 중 안정적인 전원 확보용
- 전자 모기향, 벌레퇴치 스프레이 포함 모든 벌레퇴치 용품 : 자는 동안 헌혈 엄청 하고 잠도 설쳤다ㅜㅜ
 
필요 없었던 것
- 군복 : 동원예비군 통지서를 보면 군복 착용이 완전하지 않으면 입소자체가 안 되는 것처럼 무섭게 적어 놓았고 사이즈 맞지 않는 사람은 군복 가져오면 다른 사이즈로 대여해 준다고까지 적혀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입소할 때 군복 없는 사람 조사해서 다 빌려준다. 나는 전투모가 집에 있는지 전역 때 버렸는지 참 걱정했는데 다행히 집에는 있었다. 하지만 입소부터 퇴소까지 전투모는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2일 차 말부터는 아예 휴대도 하지 않았다. 고무링이나 전투복 벨트 등은 애초에 없어서 착용하지 않았지만 확인도 하지 않았고 속에 받쳐 있는 속옷이나 양말까지도 모두 군용이 아니어도 괜찮다. 심지어 전투복 상의 풀어헤치고 다녀도 별다른 제지가 없다. 예비군의 파워를 이런 식으로 체감하다니.
- 동원예비군 통지서 : 지참하라고 되어 있는데 필요가 없었다.
- 애플워치 : 예전 복무 당시에는 애플워치 정도는 별 무리 없이 쓸 수 있었다. 근데 그사이 보안이 강화되었는지 보안어플 설치가 안 되는 워치나 태블릿 PC 등은 모두 반납이라더라. 안 내고 그냥 보관만 할까 하다가 그냥 냈다. 시계는 휴대폰으로 보면 되지만 그냥... 그냥 그랬다. 다음부터는 그냥 안 가져가야겠다.
 
 
4. 트리비아
나무위키 등을 보면 관리대대라는 곳에서 예비군 훈련을 관리하는 듯했으나 여기는 복지대대 관할이었음. 전반적인 훈련 관리는 최소인원(시작과 끝에서만 보이는 복지대대장, 중위 둘, 중사 하나, 조교 두어 명+수송대대 운전병 넷)으로 진행되었다. 동원훈련이라 관리인원이 적은 건지, 관리인원이 적어서 동원훈련을 하는 건지.
 
훈련받았던 부대 규모가 작으면 모르겠는데 공군 비행단이라 차가 없으면 어딜 마음대로 다니지 못한다. 그래도 교육받는 강당에서 도보 5분 거리에 BX 정도가 있었던 것 정도는 좋았다. 옆에 이디야가 붙어 있었기 때문에 커피는 종종 마셨다.
 
이번에 가서 군종 예비역 대위 아저씨를 만났다. 나이는 내가 한 살 더 많았지만 어쨌든 전역하면 다 아저씨다. 그분이 “예비군 와서 며칠 조용히 있다 가려고 했는데 저 때문에 귀찮으신 것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나는 누가 놀자 하면 잘 놀지만 내가 놀자고 이야기는 못하는 전형적인 ISFJ다. 게다가 일 하는 곳, 익숙한 곳이 아니면 별로 말을 하지 않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군종 아저씨는 내가 가지고 있지 않은 사교성을 풀로 장착하신 분이라 금방 친해졌다. 예비군 3년 차에 이런저런 꿀팁도 받아서 예비군 생활을 조금 더 편하게 할 수 있었다.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결혼기간에 자녀 상황도 조금 비슷해서 이야기가 좀 더 잘 통했다. 결론적으로는 군종 아저씨 만나서 참 좋았다. 나는 원체 사람 사귀는 것이 서툴러 늘 걱정이 많은 사람이지만 사실 사람 사귀는 건 생각보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임신 후반기라 집에서 쉬고 있는 와이프 보고 싶고. 그래도 와이프랑 전화통화는 일과 후 저녁시간에 많이 했다. 이래저래 군대는 보상이 적은 것보다도 자유가 억제되고 무엇보다 갇혀 있는 것이 가장 큰 단점이다. 민간인 신분의 소중함과 행복함을 절실히 느낄 수 있는 3일이었다.
 
 
 
제목이 1년차 후기라 아마 매년 연재되는 시리즈물일 것 같지만 아마 다음 년 차 때부터는 훈련 환경의 큰 변경점 혹은 골 때리는 사건사고가 아닌 이상 굳이 글로 남기지는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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