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22회 공연은 우리학번 회장단이 처음부터 끝까지 기획하고 진행해 나가며 내 마지막 공연인 만큼 내가 손을 쓰는 여러 부분에 전반적으로 조금 더 신경을 쓰고 정성을 쏟았다. 어줍잖기는 해도 여기 와 보니 보통 사람들은 잘 하지 못하는 유니크한 스킬이라 여기저기서 디자인을 할 일이 생겼고 그런 일들은 다 만들어서 남을 돋보이게 하는 그런 일들이었지만 이번 프렐류드 공연에 관련하여 만드는 모든 것들은 내가 몸담고 있는 프렐류드 자신을 돋보이게 하는 일이니까 아무래도 신경을 더 쓰게 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일련의 것들이 나를 지금 이 나락으로 빠트리게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좀 다른 이유고... 어쨌든 각설하고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어쨌든 팜플렛도 정말 아마추어 디자이너로서의 대작을 만들고 싶어 시간을 두고 천천히 만들면서 완성도에 신경을 쓰려고 했다. 작업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2010년 여름부터였으니까 총 작업기간만 해도 1년 반이라는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물론 그동안 내가 비가오나 눈이오나 항상 팜플렛에 매달려 있던 것만은 아니고 가끔 짬이 나면 작업물 한 번 열어보고
디자인에 있어 모티브와 컨셉이 될 만한 요소는 블랙/화이트와 총천연 레인보우 컬러를 최대한 활용한 색상, 그리고 고리타분한 오케스트라 팜플렛 디자인에서 최대한 벗어나 최대한 모던한 느낌을 살리고자 함이었다. 모던은 현대음악을 주로 하고 싶었던 우리 회장단의 이념을 반영한 결과였다. 물론 그 사상을 디자인에 옮기면서 가감된 부분이 있지만 그런 부분을 최대한 살리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지난 20회 공연 팜플렛 제작 이후 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고 실제로 일러스트레이터를 몇 번 만져보았지만 역시 물고기는 물에서 놀아야 한다고... 내가 구현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실제 내가 구현할 수 있는 것을 일러스트레이터에서 구현하는 데 갑절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에서 작업을 하는 것을 결국 포기하고 고해상도의 큰 캔버스에서 작업을 하느라 조금 무겁긴 하지만 포토샵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결과적으로는 성공이었지만 새로운 툴을 다룰 기회를 잃어버렸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남는다. 그래도 일러스트레이터는 필요한 부분에 적극적으로 활용했기 때문에 일러스트레이터가 노는 꼴은 없었지만.
처음 컨셉을 잡기가 참 힘들었다. 그때는 테크니카2의 많은 영상들에 매료되어 흠뻑 빠져있었들 때인데... 크게 눈길을 끌었던 것이 아티스트 D의「BEE-U-TIFUL」, Z_B의 「La Campanella : Nu Rave」, Amitasia의 「D2」, 그리고 미공개곡인 D,Xiloth의 「Emblem」등이었다. 하지만 BEE-U-TIFUL의 스타일은 한폭의 이미지로 보기에는 별 부담이 없으나 팜플렛으로 옮기기에는 조금 어려움이 있고 그런 난해한 색조합을 보는 이가 잘 받아들일 수 있는가에 대한 부분 때문에, D2는 우리가 약대도 아니고... 라는 이유로, La Campanella는 그런 중간에 꾸물거리는 덩어리를 구현할 수 없어서(실제로 비슷한 느낌으로 만든 것이 전에 20회 공연 포스터라고 올라왔던 것인데 결국 쓸 일도 완성될 일도 없었다), Emblem은 타이틀 뿐이었으나 그냥 모종의 이유로 퇴출당했다. 결국 가져온 것은 테크니카2의 전체적인 UI 스타일이었다.
이때는 새로운 로고가 나오기 전이었다. 그러니까 로고 이야기는 저번에 했었지만 다시 한 번 나중에 하기로 하고... 결국 그것이 발목을 잡아 결국 디자인을 갈아치우는 사태까지 가고 말았지만 어쨌든 이때는 테크니카2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았던지라 아무래도 그쪽의 느낌, 그리고 그쪽의 요소를 구현하려는 생각이 컸다. 이떄 수십번도 돌려 본 영상이 바로 테크니카2의 타이틀 영상이었다.
사실 컨셉만 따 오고 그 컨셉을 최대한 활용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만들다 보니 너무 많은 부분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 화근이었다. 레인보우 컬러, 그리고 22회 공연 엠블럼까지도 사실상 테크니카2의 오프닝을 카피한 부분이었다. 최대한 비슷하게 만들어보려고 노력은 했는데 역시 모션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정말 크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정적인 이미지에는 조금 맞지 않는 무리한 요소 + 결과적으로 카피 자체에 만족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디자인을 교체하게 되었다.
그래도 이동네 최초로 포스터를 여러 버전으로 나누어서 제작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팜플렛과 포스터 디자인은 같이 가기에 메인은 왼쪽의 것으로 두고 포스터는 두가지 모두 뽑아 공연 당일에 블랙과 화이트를 교차하는 그런 느낌으로 포스터를 붙이려고 했다. 물론 그러면 돈이 훨씬 많이 깨지게 되지만...
물론 카피를 한 것은 타이틀 뿐으로 타이틀을 제외한 팜플렛 컨텐츠는 순수한 창작이었다.
귀찮으니까 그냥 한몫에 다 몰아넣자. 레이어 설정이 좀 잘못되어 이미지가 어긋난 부분은 좀 있지만 뭐 어때. 각 페이지에 고유한 색상을 부여하여 각각의 캐릭터를 부여했고(색깔이 딱히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나중에 내가 프렐류드 팜플렛을 다시 만들 일이 있으면 이 색깔들은 다시 한 번 계승될 것이다. 사실 이 색깔들 중 2페이지(인사)와 4-5페이지(연주자), 6페이지(프로그램)는 지난 20회 공연때 사용한 색깔들을 그대로 가져왔다.
모던함을 살리기 위해 이래저래 채용한 부분이 많다. 타이틀만큼 화려한 색채는 아니지만 최대한 다른 색상을 선택함으로써 레인보우 컬러가 가지는 다채로움을 그대로 살리려고 노력했다.
각 페이지들 왼쪽 아래에 깔아놓은 오브젝트는 그냥 단순한 도형 같아 보이지만 잘 보면 글자다. 각각 PR, EL, UDE로 Sorin Bechira와 Stefan Romanu의 콜라보 작품인 'Trisec'이라는 폰트의 메탈릭 버전을 응용한 것이다. 최젼은 한번에 알아보던데 6-7페이지의 저것은 DMP3 화이트블루에 나왔던 바로 그 이미지인데 웹에 돌아다니는 걸 보면 화블도 아마 웹에 돌아다니는 이미지를 가져다가 모션을 주어 입맛에 맞게 사용하지 않았다 싶다.
모던함을 살리는 요소로 악기를 포함한 각종 사물들의 실루엣을 담는 것을 선택했다. 악기가 압도적으로 많긴 하지만 회원 페이지의 컵이나 곡소개의 토끼 인형이 그러하고 프로그램의 로봇들은 그러한 의도의 극을 달리는 선택이었다고 본다. 사실 오케스트라 팜플렛 치고는 정말 도전적인 결정이었는데... 이 부분 해서는 다음에 다시 이야기 하도록 하자. 각 페이지 타이틀에 다른 데코레이션을 주어 느낌을 다르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최젼한테 한번 감수를 받으려고 들고 갔을때 지적을 받았던 부분인데... 각 페이지 타이틀에 스퀘어 안에 헬베티카로 적은 제목은 알아보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근데 다른 건 포기해도 이 부분은 포기할 수 없었던 부분이었다. 모양을 위해서 일부러 가독성을 포기한 부분이라 솔직히 말하면 그냥 귓등으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