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운 이틀을 뒤로 한 채 파리를 마무리해야 하는 날이 왔다. 이날도 일정만 보면 굉장히 빡빡한 하루였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여정을 시작하기 전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간단한듯 하면서도 꽤나 복잡했던지라 그 부분에서 시간을 많이 소요했기 때문에 계획했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여정의 첫발을 내딛을 수 있었다. 계획표에는 베르사유 도착이 10시로 되어 있지만 이날 락카에 짐을 맡기고 나니 10시 30분이었다.
일단 체크아웃 후 Bercy역(메트로가 아닌 기차역)으로 갔다. Bercy역은 나중에 프랑스에서의 여정을 모두 끝마치고 이탈리아 산타루치아역으로 가는 쿠셋을 타기 위해 다시 돌아와야 할 곳이었다. 처음 생각은 이 곳에서 유레일패스를 개시하고 락카에 짐도 맡길 겸 해서 왔지만 여기선 유레일패스만 개시할 수 있을 뿐 짐을 맡길만한 락카는 구비되지 않은 것이었다. Bercy역도 작지는 않은 역이었기 때문에 여기에 락카가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지만 오산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기차시간에 다다르면 유레일패스 오픈을 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자칫 기차를 놓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어 미리 와서 일찍 오픈했다 생각하면 그리 헛걸음한 것도 아니었다.
유레일패스는 유럽의 도시간을 이어주는 기차를 이용할 때 사용하는 패스로 유레일 그룹 자체는 네덜란드계 회사이다. 목적에 맞게 굉장히 다양한 상품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① 유레일패스(유레일 글로벌 패스) : 정해진 연속적인 기간동안 제한 없이 이용할 수 있는 패스
② 유레일 플렉시 패스(유레일 셀렉트 패스) : 패스 첫 개시일로부터 2개월동안 지정된 날짜만큼 국가를 선택하여 사용하는 패스
③ 노멀패스 : 1인 이상이 개별 기차여행을 할 수 있는 1등석 패스
④ 세이버패스 : 2~5명의 승객이 같은 일정으로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조건으로 제공되는 저렴한 패스
⑤ 유스패스 : 만 25세 이하를 대상으로 하며 유레일패스와 같은 방식으로 이용하는 저렴한 패스
가 유레일패스의 종류가 되겠다. 우리가 사용한 것은 유레일 유스 패스 7일권이며 여행사를 통한 배낭여행을 하는 경우 여행사 측에서 모두 알아서 처리를 해 주기에 큰 상관이 없으나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꾸려 나가는 여행의 경우 유레일패스는 자국에서 미리 직접 끊어서 가야 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또한 유레일패스 자체는 외국에 있는 관광객들을 끌어오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지 유러피안들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서 유레일패스를 구매하면 굉장히 싸지만 유럽에서 구매를 하면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구매를 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리옹 역으로 가는 길. 노랑풍선 패밀리들은 다들 똑같은 가방을 가지고 있다. 우리 학교 캠퍼스가 예뻐서 드라마 촬영지로도 쓰이고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많은 연령대를 망라할 정도로 견학도 많이 오는데 몇 년 전에 어디 유치원생들이 노란 유니폼 입고 울학교에 소풍왔던 모습이 생각나는 광경이었다. 이 가방은 노랑풍선 출신 한국인들의 식별표마냥 이용되었다.
그리고 리옹 역. 이미 여기에 도착했을 때는 예상시간을 훌쩍 뛰어넘은 시간이었다. 베르사유 궁전 이전의 일정은 없었으나 베르사유 이후 자유일정 구성에 큰 타격을 줄만한 차질이었다. 더구나 우린 못 가본 곳도 많은데!
리옹 역에서 짐을 맡긴 후 찾은 곳은 메트로 Gare d’Austerlitz 역. 이 역을 포함하여 메트로 역 몇군데에서는 유레일패스를 제시하면 베르사유행 무료 RER티켓을 받을 수 있다. 유레일패스는 정말 유럽 이곳저곳에서 요긴하게 쓰이는 전천후 만능 아이템이다
.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유레일패스만 제시하면 일부 기차를 제외한 모든 편의 기차를 모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유럽여행에서는 가히 필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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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R Versallies-Rive Gauche에 도착. 여기서 맥도날드로 가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한다.
식사는 맥도날드 매장 안에서 해도 되지만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하는 표는 여기서 팔고 있었기 때문에 기다릴 겸 해서 그냥 여기 걸터앉아서 식사를 했다. 이때 유럽에 벌이 좀 많다고 느낀 것이 여기서 밥먹는데 벌 두어마리가 날아와서는 영 귀찮게 했기 때문이다. 한두번이면 모르겠는데 계속 그러니까 안되겠다 싶어서 햄버거 얼른 먹고 햄버거 포장하는 종이박스로 벌을 확 잡아버렸다. 벌이 박스에서 못 빠져 나와서 종이박스를 마구 흔들어 봤는데 달그락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아주 경쾌했다. 그걸 보고 우리 패밀리들도 죄다 웃고 지나가는 프랑스 사람들도 신기하고 재밌는지 다들 보고 웃었다. 내 패기가 프랑스를 웃겼어ㅋㅋㅋ
다 먹었으면 베르사유 궁전으로 향한다. 베르사유 궁전으로 가는 길에는 조형물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오른쪽에 있는 동상은 루이 14세 동상이다.
근데 이 철 구조물은 뭘까?
그리고 베르사유 궁전.
유럽여행 내내 매일 매 시간마다 선택의 기로에 서야 했다는 안타까움이 있지만 어쨌든 베르사유 궁전 이후에도 우리는 선택을 해야 했다. 또다시 체력적 한계에 부딪힌 우리는 깔끔하게 남은 시간동안 개선문만 보고 Bercy 역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할 것인가 아니면 무리를 하더라도 라데팡스로 가 신개선문까지 보고 거의 남는 시간 없이 Bercy역으로 향하여 바로 다음 국가로 출발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입장할 것이 아니라면 그다지 시간인 문제는 없을듯 했고 프랑스 와서 두 개선문을 보지 않고 가는 것은 정말 아깝다고 생각되었기에 꼭 라데팡스까지 찍자고 강하게 주장을 했고 결국 여섯명 다 약에 취한듯한 정신으로 두 개선문으로 향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매일 밤마다 여정이 끝나면 일정과 감상을 정리하면서 그 날에 대한 타이틀을 붙여 놓았는데 이 날의 타이틀은 '최소한이라도 건저야 했던 프랑스'였다. 우리는 첫째날 놓친 야경투어 둘째날 놓친 오르세 미술관, 콩시에르주리, 시청사, 오페라 가르니에, 개선문, 신 개선문, 세느 강 유람선 투어, 셋째날 놓친 로댕미술관까지 프랑스에서 자의든 타의든 누리지 못한 부분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마저도 보지 않고 간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았다. 두 개선문은 파리에 있어서 정말 '최소한의' 것이었다.
돌아가는 길에서 본 사람. 이거 인터넷에 각국 거지 시리즈에 프랑스 거지라고 나온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뒤에서 보면 이렇다. 와 정말 인간적이다.
그리고 개선문.
(1) 에투알 개선문 Arc de triomphe de l'Étoile
프랑스의 개선문이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이 개선문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개선문은 전세계적으로 엄청나게 존재하는 건축물이기에 어느 곳이건 지명을 확실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파리에 있는 수많은 개선문은 일반적으로 개인 또는 국민이 이룩한 공적을 기념할 목적으로 세운 대문 형식의 건조물이라는 것은 카루젤 개선문에서 이야기했고 이곳 에투알 광장에 있는 개선문은 에투알 개선문이라고 부른다. 에투알 개선문은 나폴레옹이 연합군에게 대승한 공적을 기념하여 건축가 샬 그랭이 설계하고 기공을 시작한지 30년이 지난 1836년에 완성되었다. 50m의 높이로 사진으로 보면 그냥 블럭 쌓아놓은 느낌만 나지만 실제로 보면 50m가 주는 위용을 아주 잘 느낄 수 있다. 개선문 바로 아래에는 유명용사의 무덤이 있으며 사계절 언제나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고 헌화가 시드는 일이 없다고 한다.
남은 일정의 소화를 위해 정말 5분만에 디아블로 웨이포인트찍듯 발만 찍고 왔기 때문에 그다지 감상이랄 것도 없다. 입장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테지만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다만 한가지 감상이라면 그간 많이 봐 왔던 익숙한 것을 실제로 보게 된 것? 실제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커서 놀랐다는 점? 날씨가 좋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항상 그렇듯 눈으로도 사진으로도 그다지 좋은 광경을 담을수 없어 아쉬웠다.
현장에서 보았을 때는 너무 작아서 안보였지만 사진으로 보니 개선문 위에 사람들이 올라서 있네? 개선문 입장이 무슨 말일까 생각을 했는데 이런 의미인듯 하다. 다음에 파리를 찾으면 꼭 여기를 올라가 보겠어.
그 다음은 신개선문.
(2) 신개선문 Grande Arche
그랑드 아르슈. 프랑스혁명 200주년을 기념하여 1989년에 파리의 라 데팡스 지역에 세워진 건물이다. 높이는 에투알 개선문의 2배가 넘는 105m, 인류의 영광을 위한 새로운 개선문이라는 뜻에서 '인간개선문'으로 통칭된다. 이곳에는 공공사업성, 교통성 등의 일부 정부부처도 입주하고 있으며 특히 프랑스 정부는 건립취지에 맞게 이곳의 지붕부분을 '인권과 인간과학을 위한 재단'에 양도하였다는 뜻깊은 부분도 있다. 한가지 더 독특한 점은 이 신 개선문과 에투알 개선문, 그리고 카루젤 개선문은 일직선상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곳 또한 과거(카루젤)와 미래(그랑드 아르슈)를 잇는 현재(에투알)이 모습을 엿볼 수 있는 놀라운 광경이다. 실제로 맑은 날 신개선문에 앉으면 에투알 개선문을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한다.
사실 신개선문의 존재는 유럽으로 오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개선문이라면 우리 나라 개선문과 나폴레옹의 개선문만 있는 줄 알았는데 루브르 박물관 앞의 카루젤 광장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도 있고 라데팡스의 신개선문도 있을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더구나 위키를 뒤져보면 세계 곳곳에 개선문이 자리잡고 있다. 커다란 개선문을 바라보면서 그와는 대조적으로 좁디 좁은 내 견문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앞으로도 이곳 저곳 많이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외도 좋지만 당장은 국내 명소를 다니고 싶다. 한국도 유럽만큼, 혹은 유럽보다 더 예쁘고 멋진 곳이 많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개선문보다 모던한 스타일의 신개선문이 더 마음에 든다. 멀리서 찍어서 크기가 그저 그래 보이지만 실제로 보면 엄청 크다.
라데팡스의 명물인 엄지손가락 동상. 세자르 발디치니라는 프랑스 조각가의 작품으로 우리나라 올림픽 조각공원에서 설치되어 있는 것이라고 한다. 따봉!
라 데팡스는 생각보다 깔끔한 도시였다. 원래 빈민가였던 이곳을 재개발하여 교통수단은 모두 지하로 다니게 했기 때문에 지상에는 건물만 남은 깔끔한 장관이 연출되는 것이다. 하지만 여유 부리는 것도 잠시. 여기서 잠깐만 쉬고 다시 Bercy역으로 향했다.
그리고 쿠셋을 타게 되었다. 쿠셋사진이라고 고른 것이 무슨 발밖에 없네. 잠깐 지나가면서 본 해리포터에서 나온 야간열차와 비슷한 모양이었지만 해리포터에서 나온 야간열차는 컴파트먼트로 우리가 탄 쿠셋과는 다른 스타일의 열차였다. 자세한 것은 이곳을 참조.
야간열차는 이름대로 깊은 밤 먼 거리를 이동하면서 잠을 잘 수 있도록 좌석을 침대로 고쳐 앉을 수 있다. 쿠셋은 3층침대로 윗층으로 갈 수록 침대의 안정성이 떨어지는것만 같은 근거 없는 불안감이 들지만 가장 윗층이 천장 공간까지 모두 다 쓸 수 있어 공간적 여유는 가장 많다. 1층과 2층은 누워있는 자세밖에 취할 수 없으나 맨 윗층에서는 앉을 수도 있고 짐도 마음대로 열어서 정리할 수도 있다. 불안하긴 해도 떨어질 일은 없고 공간도 넓으니 나는 윗층이 가장 좋더라.
이날 처음으로 쿠셋을 타 피곤도 싹 잊고 이칸 저칸 옮겨다니면서 구경을 다녔다. 그러다가 명규형이랑 수정이랑 다시 만났는데 얼마나 반가웠던지. 어쨌든 그 둘과 나랑 영짱까지 네명이서 신나게 쿠셋탐험을 하다가 발견한 식당칸에서 밤마실을 했다. 정말 시시콜콜한 이야기라 이 날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모르겠다. 좋아하는 술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이 때 먹은 4유로짜리 하이네켄은 유럽여행 내내 마신 맥주 중에서 가장 맛있었다. 이런 쿠셋에서의 밤마실은 쿠셋을 탈 때마다 계속될 줄 알았지만 이번이 처음이자 끝이었다. 식당칸 종업원이 얼굴도 잘생기고 유머러스하고 따지고 보면 공무원 출신이라 한국사람이었다면 한국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한 것 같다.
그리고는 내일을 위해 잠을 자는데... 편안하고 안락한 잠자리를 생각했다면 큰 오산이다. 불편한 자리에 웬종일 덜컹거리고 추웠다 더웠다 옆방에서 술파티하는 소리까지 잠을 자기에는 최악의 조건들로만으로 구성이 되어 있다. 여기서 자는 것도 일이다.
어쨌든 부푼 꿈을 안고 굉장한 기대와 계획으로 희망차고 활기찬 프랑스를 꿈꿨지만 그놈의 월드스타 비가 훼방을 놓는 바람에 아쉬움으로만 남았다. 메르시 보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