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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글로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라고 다 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웹에서 화제가 되는 시리즈는 가급적 챙겨 보면 좋다. 간혹 안 좋은 작품이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지만 화제가 되는 대부분의 작품은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최근 그 트렌드를 따라서 덕을 본 것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였고, 피를 본 것은 <재벌집 막내아들>이다. <더 글로리>는 워낙 화제가 되는 작품이라 애저녁에 보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일부러 파트2가 모두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보았다. 파트1 이후 파트 2가 공개될 때까지의 시간이 조금 소요되면 파트 1의 디테일한 부분을 많이 까먹어버려 감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이건 얼마 전 보았던 한국판 <종이의 집>이 그랬다. 어쨌든 <더 글로리>는 좋은 배우에 좋은 연기, 좋은 각본에 좋은 연출까지 간만에 큰 흠이 없는 웰메이드 TV시리즈였다. 몇가지 남길 감상이 있어 조금만 써 봄.

 

 

 

1. 신을 믿지 않는 자를 돕는 신

힘 있게 치고 나가는 파트 1에 비해 파트 2는 조금 힘을 잃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파트 1에서 문동은이 짜 놓은 판이 착실히 진행되는 데에서 느껴지는 카타르시스가 파트 2에서는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동은의 계획은 상대방의 반격으로, 혹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의해 틀어지게 된다. 그 와중에도 문동은은 현 상황을 최대한 활용하여 능동적으로 다음 수를 계획하기도 하지만 그런 수읽기가 무색할 정도로 복수는 너무나도 편하게 진행된다. 문동은을 도와주는 이들이 너무나도 훌륭하고(주여정은 인물의 배경 상 그렇다 치지만, 강현남은 먼치킨 그 자체다) 여러가지 상황도 활용하기 좋도록 뚝뚝 주어지며 의도하지 않았으나 복수하고자 했던 이들이 서로 공멸하는 등 이래저래 운 좋게 얻어 걸린다. 극 중 문동은은 내내 자기는 운이 없다, 신은 나를 돕지 않는다 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데 과연 이게 적절한가 싶다. 흔들리는 개연성과 핍진성 아래 극을 다 보고 나면 드는 생각은 '과연 원래는 어떻게 복수하려고 했을까?' 그리고 가해자들 개개인의 반성 없이 그저 나락으로 내몰기만 할 뿐인 '문동은의 복수는 충분한가?'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어디서 신을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들 간의 대립 구도라는 해석(이 해석은 작가가 공인한 부분이다)을 듣고는 뭔가 수긍이 가는 부분이 있었다. 문동은은 신을 믿지 않는다. 자신에게 고통을 준 복수의 대상들은 스스로가 종교(무속신앙, 기독교, 불교)에 가담하며 기대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거짓된 믿음을 갖고 있을 뿐이며 모든 상황이 문동은을 도와주고 끝내 복수에 성공한 것은 신이 결국 신을 믿지 않는, 신이 자기에게 도움조차 주지 않는다고 믿고 있는 문동은을 통해 그들을 벌한 것이다. 신이 하는 일은 개연성이 없을 수 있습니다. 먼 훗날 이 복수의 여정을 되짚어가며 신이 함께하며 자신을 도왔음을 과연 문동은은 알까? 이 대목에서 잠언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2. 발포비타민

나는 이게 대단한 은유적 장치라 예상했다. 발포비타민이 물에 녹으며 나는 기포 소리는 박연진 일당이 문동은의 팔을 고데기로 지질 때의 소리와 흡사하게 느껴진다. 언젠가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발포비타민을 녹일 때, 주여정은 편안함을 느끼지만 문동은은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씬을 통해 두 사람은 결국 섞일 수 없는 물과 기름같은 존재임을 보여주는 장치로 사용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두 사람 간에는 은유적인 대비가 많다. 문동은은 보통 화상이나 뜨거움 등 불로 표현된다. 반면 주여정은 물에 발포비타민을 녹이거나, 물 속에 가라앉거나 하듯 물로 표현된다. 문(moon=달)과 주(낮=해) 등 이름에서 보이는 대비도 있다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잘 모르겠고... 어쨌든 그렇게 대비를 보일 것 같은 두 사람이었지만 결론은 문동은도 발포비타민 녹는 소리를 편하게 잘 듣는 것으로 끝나서 김이 좀 식었다. 애초에 발포비타민 자체가 흔한 소재는 아니다. 다 지나고 보니 PPL을 어떻게 인물에게 잘 녹아낼까 고심한 흔적만 느껴진다. 애초에 발포비타민 마시는 씬도 안 나오더만.

 

사실 두 사람의 애정씬이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문동은을 향한 주여정의 사랑은 극을 이끌어가는 데 주요한 요소로 사용되지만, 우리-적어도 나는 문동은의 복수극을 보고 싶은 것이지 두 사람이 꽁냥꽁냥하는 걸 보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의 꽁냥씬은 <재벌집 막내아들>의 진도준과 서민영의 꽁냥씬 느낌이 났다. 나는 너희가 꽁냥거리는 게 궁금하지 않아... 극의 초반은 굉장히 무겁고 시니컬한 느낌이 나서 피도 눈물도 없는 복수극만 가득하고 이런 가벼운 애정씬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김은숙 작가였다 싶다. 그래도 이 TV시리즈의 애정씬은 그다지 필요 없다고 생각해서 좀 덜어내면 더 담백하고 좋지 않았을까 싶다. 옥의 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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