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일이 있어서 생방은 못 봤고 오늘에서야 보게 되었다. 어제 결승전 끝나고 오늘 결승전 경기 방송분 찾아서 보기까지 혹시나 누가 또 결과 알려줘서 그 동안 쌓아뒀던 기대감이 사라져 김이 팍 식어버리지는 않을까 어떻게든 정보를 차단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덕분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결승을 보게 되었다.
4강에서 저그 박찬수를 잡고 올라온 도재욱이지만, 토본('토스전 이겨본지 오래됐다'가 아니고 그냥 토스전 본좌)이라 일컬어지는 박성준을 넘기란 좀 힘들어 보였다. 4강도 박찬수를 완전 발라놓고 올라온 게 아니고 패패승승승으로 어떻게 보면 좀 힘들에 올라왔다고 볼 수 있기 때문에 도재욱의 저그전이 그렇게 썩 잘한다고 검증이 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박성준의 토스전이 완전히 살아났다고 보기에는 좀 뭣했던게 최근 깊은 부진에 빠져 있다가 STX 이적 후 기량을 다시 되찾았지만 뭐 송병구나 허영무를 잡고 올라왔으면 또 모를까 잡고 올라온 토스가 (좀 미안하지만)안기효나 손찬웅같은, A급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들이었으니까. 어쨌든 뚜껑은 열어봐야 어떻게 돌아갈지 알겠다고 느끼고는 크게 누가 더 우세하다고는 그다지 생각을 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좀 생각을 해 보니 경기 시작 전에는 박성준이 그래도 좀 우세하지 않을까 예상을 어느정도 했었고, 항상 나는 토스를 응원했으니까 내심 도재욱의 승리를 바라고 있었다. 아니 내가 늘 토스를 응원했다기 보다는 So1 오영종 이후로 플토 우승자가 나오질 않으니 오랜만에 플토가 우승하는것도 보고싶은 마음이 더 컸다.
뭐 방송국 입장에서는 박성준의 우승을 더욱 바랐을 것 같다. 이번 에버 스타리그는 듀얼과 통합을 하면서 표면적이지만 우승자도 굉장히 많이 분포를 했었고, 그런 우승자들이나 아니면 요즘 강세를 보이는 스타 플레이어들이 2라운드에 진출을 하게 된다면 정말 꿈에도 그리던 올스타의 흥행리그를 만나게 될 수 있었으나 결국에는 곳곳에 잠재되어있던 수많은 리그브레이커들과 기존 우승자들의 부진 속에서 맞게 된 2라운드는 앞서 꿈꿔왔던 흥행리그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져 갔다. 게다가 8강에서 이영호도 떨어지고 유일한 로열로더 후보였던 허영무도 떨어지고 뭐 다 떨어지고... 요즘 한창 강세를 보이는 프로토스의 남은 희망 도재욱도 어느정도 흥행의 요소는 있었지만 결국 최종적으로 남은 흥행카드는 3회 우승과 골든마우스를 노리는 박성준 뿐이었다. 골든마우스 자체도 힘든 일이지만 저그가 골든마우스를 먹는다니 얼마나 대단한 일일까. 진짜 박성준이 결승에 올라왔으니 망정이지 손찬웅이 박성준마저 잡고 올라오면 이번 결승은 정말 원더걸스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리그가 되었을 것이다.
오프닝은 뭐. 이번 에버 오프닝도 박카스만큼은 아니지만 그다지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해서 박카스때에서 보여준 그런 멋진 오프닝을 보여줄까 했는데 결승전 예고영상에 기존 오프닝을 적절히 섞은 수준의 조금은 심심한 오프닝밖에 보여주질 못했지만 나름 스타일은 마음에 들었으니까 넘어가도록 하자.
그리고 경기. 오델로는 운영으로는 저그가 플토에게 조금 힘들었기 때문일까 포모스에서 1경기 오델로에서는 기습적인 초반 공격이 나올 것 같다고 하더니 1경기부터 박성준은 5드론을 들고 오는데 5드론 실패 이후 운영으로 이기긴 했지만 그런 틈만 나면 휘몰아치는 공격적인 스타일이 도재욱에 맞서는 박성준에게는 무기였다. 도재욱이 시간을 주면 점점 강해지는 스타일의 선수이다 보니 그런 점을 잘 파악한 듯 2경기에서도 좀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드론 밀치기로 승리를 따내어버리고, 안드로메다에서는 의외로 초반 공격을 잘 막아내어 도재욱이 잘 나가는가 싶더니 결국 얼마 피해를 주지 못하고 박성준에게 휘둘리며 결국 논란의 정점에 있던 화랑도는 나오지도 못하고 3:0으로 박성준이 승리. 아레나 MSL 4강 이제동-박영민도 그렇고 이번 결승도 그렇고 3:0 스코어는 정말 병맛이라고 느끼고 있었지만 이번 결승은 딱히 그런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도재욱을 응원하던 나였지만 상대를 압도하는 2경기의 박성준의 경기를 보면서 소름이 돋고 전율을 느꼈다. 정말 도재욱이 부족하기보단 박성준이 너무 대단해서 얻을 수 있었던 우승인 것 같다. 7월이니 July가 우승을 하는구나. 그리고 금쥐...
이번 결승은 참 이야깃거리가 많다. 앞서 말했던 흥행이라던가 경기에 사용되는 맵도 그러하지만 박성준의 우승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지. 사실 이번 박성준의 우승을 높이 살 수는 없는 것이 이번 대회에서 박성준은 줄줄이 프로토스만 잡고 올라와서 천운이라는 꼬리표를 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항상 보면 스타리그가 대부분 그렇긴 하지만. 아직 박성준의 테란전이 검증이 되지 않아 이번 우승을 진정한 우승이라고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이번 우승을 차지하기 바로 전의 박성준의 모습은 어떠했나. 극심한 부진 끝에 STX라는 벼랑(자력으로 플옵 진출한 지금은 결코 벼랑이 아니지만)에까지 몰린 박성준이 아닌가. 비록 천운우승이긴 해도 보통 게이머라면 그런 부진을 딛고 일어서기가 굉장히 힘들었을텐데 그런 것을 물리치고 이번 스타리그에서 정상에 선 박성준의 우승이 그렇게 폄하될 건 아니라고 본다. 때문에 이번 우승을 나쁘게 보지도, 그렇다고 굉장히 훌륭하게 보지도 않는다. 그냥 잘했다 그냥.
하지만 커리어상으로 이제 3회 우승도 하고 금쥐도 먹었으니 박성준도 본좌라인에 넣어야 하지 않느냐는 소리도 있던데 아무래도 그건 좀 개풀 뜯어먹는 소리인 것 같다. 적어도 본좌면 당대 최고의 포스를 가지고 그 포스도 어느정도 유지를 해야 본좌라인에 들어갈까 말까 하는데 한참 부진에 빠져 있다가 이제 막 다시 정신차리고 우승한 선수가 무슨 본좌-_- 그렇게 들쭉날쭉하는데 본좌라인에 넣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앞으로 박성준이 계속 꾸준히 포스를 이어나가 한때 마재윤처럼 박성준이 뜨면 죄다 벌벌 기어다니고 그런다면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지금은 때가 아니다.
플토가 오랜 시간 끝에 다시 우승을 차지할 수도 있었지만 그러지 못한 것도 끝내 아쉽고, 서로 팽팽하게 밀고 당기면서 좀 더 긴장감 있는 경기가 펼쳐질 수도 있었는데 그것도 아쉽고, 끝내 눈물 흘리는 도재욱도 아쉽지만 굉장히 강한 임팩트를 느낀 결승전이어서 그것으로 위안을 삼고 싶다. 언제나 그랬듯 다음 시즌을 또 기약해야지... 정말 다음 시즌에서는 매 경기가 명경기이고 매 대진이 흥행인 그런 시즌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