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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 노 웨이 홈>

 

 

1. 이번 작품은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끼겠지만 이 영화는 <어벤져스 : 엔드 게임>과 닮아 있다. <엔드 게임>이 지난 10년간의 MCU를 모두 담으면서 그 과정을 모두 따라온 팬들에게 헌사하는 작품이라면, <노 웨이 홈>은 더 나아가 20년간 세 번이나 다시 쓰인 스파이더맨 시리즈들을 총망라하는 작품이다. 액션이 다소 아쉽고(하지만 미러 디멘션은 언제 보아도 기분이 좋다. 내가 이래서 닥스를 좋아함) 디테일한 부분에서 뭔가 어물쩡 넘어가는 부분은 있지만 노 웨이 홈은 간만에 몇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훌륭한 작품임에는 틀림없다.

 

새로운 인물은 단 하나도 없다. 기존의 빌런에 기존의 주인공들이다. 다른 세계관이지만 '스파이더맨' 단 하나로 이어진 인물들을 한 곳으로 모아두어 보는 이로 하여금 깊은 반가움을 느끼게 하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대표적인 컨셉이다. 삼스파를 한 화면에 모아둔 것으로 이 영화는 제 할 일을 다 했다. 더 나아가 많은 인물들이 나와 다소 번잡할 수 있지만 그 인물들을 십분 활용하여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는 점, 그리고 과정이 모두에게 불살과 두 번째 기회를 주고자 하는 스파이디에 의해 주체적으로 이루어짐이 좋다. 빌런들을 죽이거나 죽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스파이디 본인만의 방식으로 갱생시키는 선택과, 그 과정에서 빚어지는 영웅과 빌런의 화해, 그 모든 것을 끝낸 후 본인을 세상으로부터 지워 돌아갈 집도 없는(NO WAY HOME) 신세가 되지만 그 결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키고 위대한 영웅으로 발돋움하는 그 모든 과정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큰 만족감을 준다. 

 

기존 MCU의 인물들도, 다른 세계관의 새로운 빌런들을 어느 하나 비중이 소홀함 없이 잘 활용하여 완급 조절을 잘 했다는 느낌이 든다. 리저드나 샌드맨 등의 사이드 빌런도 나름 잘 활약했고, 그린 고블린/닥터 옥토퍼스/일렉트로의 메인 빌런은 각자의 역할은 다르지만 고른 비중으로 작품에 잘 녹아들었다. 그 와중에 윌럼 더포가 가장 반짝반짝거린다. 10년도 넘었지만 별반 다를 바 없는 이미지(+그 나이에 이런 빌런의 느낌이 아직도 잘 어울림)에 한번 놀랐고, 입체적인 빌런의 모습을 소름 돋는 연기력으로 잘 묘사하여 캐릭터가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느낌. 더불어 최근 인터뷰에서는 배우가 직접 액션을 소화하기를 요청했다고 하여 더욱 놀라웠다. 이런저런 면에서 역시 베테랑은 베테랑이다 싶다. 이대로 보내기 아쉬운 빌런들이지만 우리에게는 시니스터 식스가 있다. 좋은 흥행을 계기로 다양한 프로젝트가 빨리 계획되었으면 한다.

 

아이언맨 후계자 신세를 면하지 못했던 MCU 스파이디를 제대로 된 스파이더맨으로 독립시킨 것 또한 좋은 흐름이다. 이는 아이언맨의 후계자로 아이언하트를 내세우려는 의도와도 부합하지만, 어쨌든 그것을 떠나 스파이디는 스파이디다. 그동안의 MCU 스파이디는 촐랑대다 못해 ASK맨의 면모를 과감하게 보여줘서 가끔은 답답하기도 했는데 내적으로 성장한 스파이디가 기대가 됩니다. 아이언하트가 ASK맨 포지션을 잡아서 스파이디에게 훈계를 들으려나?

 

 

2. 멀티버스 : 로키 vs. 노 웨이 홈

최근 릴리즈한 MCU 작품 중 멀티버스를 주로 다룬 두 작품을 비교해 보자. <로키>는 멀티버스 사가(인피니티 사가 이후의 명칭은 뭐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의 분위기로는 이런 이름이 가장 어울릴 것 같다)의 시작으로, 다중우주라는 개념의 설명을 통한 세계관의 확장을 목표로 한 TV 시리즈이다. 지난 포스트에서도 언급을 했지만 이 시리즈에는 로키라 아주 무수히 많이 나온다. 한 가지 특징은 그 많은 로키들이 다들 제각각이라는 것이다. 단 두 가지, 그린+옐로의 투톤 컬러와 있거나 없거나 한 뿔이 '아 이 인물도 로키이겠구나'를 파악하게끔 하는 장치가 될 뿐이다. 그 안에서의 로키는 서로 제각각 성격도 다르고, 생긴 것도 다르고, 심지어 말을 못하기도(악어 로키) 한다. <로키>는 멀티버스의 다양성(diversity)과, 그로 인해 일어나는 혼란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반면 <노 웨이 홈>은 멀티버스의 일관성(consistency) 혹은 항상성(homeostasis)을 보여준다. 세 개의 세계에서 온 피터 파커가 서로를 닮아 있었던 것처럼 수많은 세계관에 존재하는 한 인물이 가진 기조는 똑같다는 개념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물론 각각의 인물에게 조금씩 다른 점은 있다. 특히 톰스파의 다른 점이라면 문제의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다는 것이다. 벤 삼촌이 죽은 것은 본인의 잘못이니 모든 피터 파커가 미숙한 점이 있는 것은 맞지만, 톰스파는 특히 그 미숙함이 부각되는 느낌이다. 그런 미숙함은 사고를 치게 되는 원인이 되지만 결국 어떻게는 본인 방식으로 수습을 하려는 모습이 우리가 알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이다 싶다. 그런 가운데 큰 힘엔 큰 책임이 따르는 것도, 그 빌드업을 위해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 것도, 자의와 타의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가난한 외톨이가 되어 혼자만의 힘으로 친절한 이웃 스파이더맨이 되는 것도. 이러한 역경을 통해 성장하여 속이 꽉 찬 영웅으로 발돋움하는 것은 세 스파이더맨 모두가 똑같다. 각각 마이너한 차이점은 있지만 큰 흐름은 결국 하나로 귀결되며 캐릭터에 대한 서사적 안정감을 부여하는 점이 <노 웨이 홈>에서 보여준 멀티버스의 또 다른 모습이다. 멀티버스라면 으레 다양성을 이야기하기 쉽고, 앞으로의 MCU에서도 멀티버스를 주제로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나는 이런 한결같은 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런 작품이 하나쯤 있어도 나쁘지는 않은 듯.

 

 

3. MCU와 멀티버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멀티버스는 제작자 입장에서는 참 달콤한 열매일 수밖에 없다. 물론 많은 슈퍼히어로 영화가 상식과는 거리가 멀기는 하지만, 그래도 관객은 그 가운데서도 개연성에서 오는 미묘한 현실성을 찾으려고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다양한 상상력은 '만약의 만약에라도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리란 법은 없을까?' 하는 현실성과 연결고리를 갖게 될 때 더욱 강한 몰입력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많은 시리즈물들이 시간의 흐름에 따른 개연성을 교과서처럼 답습해 왔고, 원래의 시간을 벗어난 프리퀄 등은 본 시리즈의 서사에 살을 더해줄 뿐이다. 하지만 이 멀티버스는 그것을 뛰어넘어 어떤 이야기라도 가능하게 해 준다. 마블이 <로키>라는 TV 시리즈를 통해 준비해 오던 멀티버스는 노 웨이 홈에 의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왔고 앞으로 개봉될 닥터 스트레인지의 후속작(심지어 영화 제목에 멀티버스가 들어가 있다)을 필두로 더욱 이야기를 확장해 나갈 것이다.

 

이 시리즈를 꾸준히 따라온 마블의 충성스러운 팬들에겐 반가우나 신규 팬들을 이끄는 데는 여전히 발목을 잡는다. 여전히 MCU 자체가 세월이 지난 만큼 수많은 시리즈가 쌓여 이를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여기에 멀티버스를 끼얹으면? 이미 TV 시리즈로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가운데 앞으로 나올 이 시리즈들을 온전히 소화해 낼 신규 팬들이 얼마나 될까 걱정이 된다. 이제는 영화도 공부하며 보아야 하는 시대가 오다니...

 

 

4. 트리비아

- 나이 든 토비를 보며 나 또한 나이를 들어버림을 자각함.

- 톰 홀랜드 몸이 좋네. 여기서 더 나이가 들면 뉴 어벤져스를 이끄는 의젓한 이웃이 될 거야요. 최근에 톰이 하차를 암시하는듯한 발언을 했다던데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다. 톰이 안나온다면 다른 인물이 나와 짜잔 우리의 피터 파커는 성장해서 이렇게 건장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하면 끝날 일이라서. 그래도 가급적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배우가 그대로 맡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본인의 의사도 중요하기에 모두가 만족하는 방향으로 잘 결정되었으면 좋겠다.

- 전세계적으로 밈이 되고 있는 토비 맥과이어의 댄스 씬을 어떻게든 활용해 주었으면 했는데 아쉽게도 나오진 않는다. 매우 아쉽다... 엔딩크레딧에라도 넣어주지

- 참고하면 좋을, 황석희 번역가가 쓰는 노웨이홈 N차 설명서(#). 시리즈와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욱 질 좋은 번역을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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