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andemic
이 판데믹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처음에는 일상의 소중함을 느꼈다. 우리가 당연하다 생각했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위생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 또한 알게 되었다. 올해 기타 감염질환 발병률은 눈에 띄게 줄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회의 민낯들, 숨겨져 있던 어두운 면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사회를 어지럽히는 이단, 이기적인 기독교, 불통의 정부. 우리가 그동안 보지 못한 것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는 계기가 되었지만 반년 이상 이어지는,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격심 해지는 이 사태는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을 시사하고 있는 것일까? 만나는 사람마다 지나가듯 던지는 질문이지만 모두가 쉽게 답을 내지 못했다. 연말까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중 얻은 것은 결국 이 힘든 시기를 통해 각 공동체가 의식을 가지고 하나 되어 일어서는 계기가 되었고 이러한 고난들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라는 것이다 소망 담긴 결론이다. 이 힘든 시기가 지나고 나면 무한한 감사함을 느낄 것 같다. 하지만 이 판데믹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국내외의 많은 상황들이 너무... 너무 혼란스럽다.
인턴 때는 메르스가 있었지만 그때는 내가 자유가 없던 시절의 판데믹이고, 지금도 군의관 신분이라 완전 자유롭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느 정도 여유가 있는 삶에서 이 판데믹이 아니었으면 이것저것 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해외여행은 물론이거니와 올해는 만남이 줄어 이래저래 사람이 고픈 사람한테는 최악의 한 해였다 싶었다. 약속도 줄고 군의관 회식도 별로 못하고... 사람을 사귈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없어서 아쉬웠다.
접때 포스팅했던 생활치료센터 업무는 판데믹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또한 코로나때문에 외부적인 걸 할 수는 없으니 내 내부적으로 뻗어가는 것에 집중했다. 말이 좀 이상한데 내실을 다졌다고 해야 하나. 혼자 생각할 시간이 많아 지난날을 돌아보고 나의 말과 행동을 점검하고 세상을 보는 방식을 점검했다. 길게 쓰긴 뭣해서 여기에 덧붙이지만 신앙적인 면도 많은 변화와 성장을 거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절대적인 정도는 알 수가 없지만... 세상을 보는 방식과 더불어 종교인으로서의 내 모습을, 그리고 우리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를 다시금 살펴보았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작금의 사태에서 기독교가 부정적인 영향을, 그것도 아주 많이 끼치고 있는 점이 참 마음이 아프다. 내 이웃을 사랑하라 했거늘. 본인의 신앙도 중요하지만 지역사회에 해악을 끼친다면 신앙이 가진 의미가 퇴색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과연 누가 작금의 한국 기독교인을 보고 예수님의 선하심을 볼 수 있을까? 개탄스럽다.
어쨌든 그동안 공부하고 일을 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삶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그다지 없었는데 올해는 참 유익한 시간들을 가졌다 싶다. 올해 읽은 책들이 그러한 과정에 많은 도움이 되었음. 이러한 고민들을 올해 들어서야 비로소 할 수 있게 되었지만 지금이라도 하게 되어 참으로 다행으로 여긴다. 앞으로도 이런 경험들을 많이 하고 싶다. 걱정도 고민도 경험도 많이 하고 싶고, 결국엔 내 삶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하는 소망이 간절하다.
2. Routine
2019년부터 쭉 이어진 나의 인생의 가장 크나큰 목표는 '나태를 타파하자'였다. 수련 환경에 치여 집에 돌아오면 뭘 할 에너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먹고 뒹굴기만 하고, 아니면 병원 동기들끼리 롤이나 하거나 하는 정도였지만 올해는 뭔가 달랐다. 군의관이 되고 나서 엄청 많아진 여가시간을 두고 정말 많은 고민을 해 봤는데 가장 간절했던 생각은 '이 귀한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낼 수 없다'였다. 긴 쉼의 시간이라 생각하여 열심히 쉬면 나의 멘탈은 나아지겠지만 돌아보았을 때 별로 남는 것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몇 가지를 정해 두고 이건 열심히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물론 시간을 정해두고 정해진 만큼 일정하게 채워 나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스스로를 강박적으로 얽매어둔다면 부담감과 거부감에 오히려 일을 그르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열심히 하려고 하되, 시간이 안되거나 체력이 안되거나 기분이 안 되는 날엔 과감히 건너뛰는 용기도 함께 가지자 하는 마인드로 편하게 갔다. 그 마인드가 오히려 여러 가지 일들을 길게 이끌어 루틴으로 만드는 데 많은 역할을 한 것 같다. 어쨌든 허송세월을 보내는 게으름은 올해 상당한 정도로 타파한 것 같아서 매우 마음에 듭니다. 다른 부분의 게으름을 타파하지 못해서 문제지... 이건 다른 포스트에서 후술함.
(1) 러닝
러닝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이 포스트(#)로 갈음함. 러닝 조아요
(2) 기타
기타를 치게 된 배경은 이전 포스트(#)로 갈음함. 동숲 메인 테마 이후에 연습하는 곡은 히사이시 조의 Summer(#), 그리고 칸노 요코의 Waltz for Zizi(#)다. 사실 나는 Waltz for Zizi를 치기 위해 기타를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이런 곡 말고도 기본적인 개념과 스킬을 익혀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든다. 근데 나는 치고 싶은 것만 연습하고 있음.
(3) 영화와 책
사실 올해는 영화를 많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올해는 넷플릭스에서 챙겨 볼 드라마가 굉장히 많았고 지금은 갑자기 진격의 거인에 꽂혀서 정주행 중이라 아무래도 영화는 뒷전이 되었다. 왓차 영화 평가수 1천건 채우는 것이 목표였는데 내년으로 미뤄졌다. 올해는 954건에서 끝. 그런 의미에서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감명깊었던 다섯을 고르라면 음... 두 교황, 소공녀, 나이브스 아웃, 엔딩 노트, 파이란. 탑5엔 없지만 더 라이트하우스나 비포 시리즈, 본 투 비 블루도 굉장히 좋았다. 제일 기대했던 테넷은 사실 잘 모르겠음ㅎ
반면 책은 원래 계획에 없었던 거지만 어쩌다 보니 많이 읽게 되었다. 시집만 빼고는 장르 안 가리고 많이 읽는 것 같다. 책을 읽을 절대적인 시간 자체가 많이 늘어나기도 해서이긴 한데, 외래진료 중에도 환자가 끊기면 책을 읽을 수 있고, 특히 당직오프 때는 딱히 할 일이 없어 점심 먹고 근처 스타벅스 가서 몇 시간 동안 책을 읽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지만 산문집을 읽는 것이 너무 좋다. 산문집은 글을 쓰는 개인의 생각이 오롯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산문집은 읽으면 다른 사람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느낌이 너무나도 그대로 전달되어 온다. 더불어 그런 것들을 통해 나에게 고민거리를 주고, 그 고민에 나름대로의 답을 하며 삶의 모델이나 방향을 설정해 나갈 수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시간과 여건이 되는대로 책을 읽을 것이다. 아주 많이.
(4) 글 - 블로그
글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쓰는 데도 약간 취미를 붙이고 있는데 올해 유독 포스팅이 많아진 것이 그 결과다. 특히 10월 이후로는 정말 폭발적이라고 할 정도로 글을 쓰고 있다. 여러 주제로 글을 쓰지만 대부분은 내가 경험한 것 위주이고, 글을 남기는 목적은 기록의 의미가 크다. 사회 현상에 대한 고찰도 해 보고 싶지만 사실 그런 쪽으로는 잘 생각해 보지 않기도 했고 생각의 깊이도 적은 것 같아 운을 띄우는 것 자체가 조금 두렵긴 하다. 그리고 그런 주제로 꼭 글을 쓰고 싶은 상황이 오면 PGR 같은 커뮤니티에 가서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랑 의견을 교환하는 것이 더 맞는 것 같다.
가만 보면 검색 등으로 인한 유입이 아주 조금 있다. 그런 점도 고려해서 일차적으로는 다른 사람이 본다는 가정 하에 글을 쓰는 것이고, 그런 만큼 문체도 다른 사람이 쉽게 볼 수 있도록 맞추려고 노력한다. 나의 고질적인 문제는 문장을 길게 쓰는 것이었다. 다만 이제는 문장도 적절하게 끊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문장을 찾아 읽기 쉬운 글을 쓰려고 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글은 미리 써 두고 여러 번 읽고 쓰고를 반복하다가 내가 마음에 들 때 공개로 돌린다. 간혹 문장이 이상하거나 글이 어설프거나 하는 글도 있는데 그런 글의 대부분은 내가 귀찮거나 글을 올리기 적당한 시기 내로 충분히 퇴고하지 못했을 때이다. 그런 퇴고 없이도 읽기 쉬운 글을, 더불어 앞으로는 독창적이고 확고한 생각이 가미된 뼈대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소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실 이 블로그의 최대 독자는 다름 아닌 글을 쓰는 나다. 우선은 글을 쓰는 맛과, 예전에 썼던 글들을 읽으면 예전에는 이런 생각을 했구나 하는 맛에 글을 자꾸 남기게 된다. 에세이를 보면 글 쓰는 게 되게 쉬워 보인다. 그러면서 나도 제대로 글을 써 보고 싶은 마음도 조금씩 들지만 그러면 예전에 재미로 디자인했을 때처럼 창작의 고뇌에 빠지게 되어 오히려 글이 잘 안 나온다. 글은 이 정도로 소소하게 쓰는 게 딱 적당한 것 같다. 내가 진정 소통이나 피드백 같은 걸 원했으면 네이버블로그를 썼겠지... 근데 별로 그러고 싶은 마음이 없다. 피드백은 미래의 내가 해 줄 것. 그래서 내 블로그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 그래서 스킨도 바꾸지 않고 있는 것. 여담으로 최근에 스킨 시스템에 소소한 변경점이 있어 내가 직접 스킨을 수정해야 할 때가 있었는데 좀 힘들었다.
(5) 게임
게임을 안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방향이 크게 바뀐 점은 이제 롤을 그만하겠다는 점이다. 2시즌 연속 자력으로 골드를 찍어서 뭐랄까... 이젠 랭크에 대한 미련이 없어졌다. 그리고 게임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팀 게임은 친구와 함께 해서 즐거운 점도 있지만 모르는 사람과 같이 했을 때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고, 그런 와중에 온갖 인간 군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디메리트 같다. 즐겁자고 시작한 게임에서 수년간 그런 감정 소모를 겪고 나니 왜 그렇게까지 게임을 해야 할까 싶고. 그래서 롤 접고 이제는 다른 거 한다. 올해는 동숲을 가장 열심히 했고, 이외에도 스위치 타이틀들을 중심으로 소소하게 게임을 했다. 좋다고 해야 하나, 게임 라이프의 큰 변화는 게임시간 자체가 많이 줄었다는 것이다. 여가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아진 것도 한몫하겠지만 이제 그 여가시간을 게임만으로 보내지 않는다. 게임 이외에 다른 즐거움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 와서 정리해 보니 만족할만한 성과를 이룬 것 같다.
3. Medical
전문의 신분이 된 것이 가장 큰 버프가 아닌가... 하지만 군의관 신분으로 변해버린 점이 가장 큰 너프가 아닐까... 군의관이 되어서는 예전처럼 severe case, 특히 stroke 환자들을 덜 보게 된 건 한편으로 마음이 편하지만 예전만큼의 긴장은 없으니 아주 조금은 무료하다 싶기도 하다. 그리고 군대 가면 3개월 동안 전부 다 잊어버린다 하는 게 정말 맞는 말 같다. 족보처럼 외우고 있던 수많은 내용들을 금세 까먹어버렸다. 그래서 올해는 시근껏 환자를 보지만 아직은 부족한 점은 없다 싶다. 다만 흥미로운 점은 그동안 두통환자를 볼 기회가 적었는데 여기서는 거의 대부분의 두통환자가 내 앞으로 오니깐 케이스가 많아져서 참 좋다. 생각보다 migraine 환자가 많고 약을 썼을 때 실제로도 효과를 보이는 점이 나름의 소소한 수확인 것 같다. 이외에 의학적인 성장은 그다지 없고, 아니 사실 일반 의료의 비중이 높아져서 색다른 점은 있지만 내가 모르는 부분의 진료를 한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걱정스럽기도 하고.
이외에는 환자를 볼 때 좀 더 친절한 자가 되고자 노력을 했다. 충분히 설명을 해 주고 환자가 agree 할 수 있을 때까지 설득을 하는 편이다. 아직까진 병사들한테 존대도 계속하고... 근데 계속 존대를 하는 게 맞나? 그냥 다른 사람처럼 해야 하나? 잘 모르겠음.
4. 내년은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은 올해 이것저것 해 보았으니 앞으로는 무언가를 공부하고 싶다. (1) 군의관 친구 졸라서 pain injection, (2) 바리스타, (3) 한국사, 그리고 이제는 (4) 주식을 해야겠다. 가능하면 부동산 해 보고 싶기는 한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ㅜㅜ 개인 재테크 수단으로 우량주에 적금처럼 넣으면서 군의관 복무 중이라도 소소한 수익 활동을 해 보고 싶다. 사실 돈 욕심은 그렇게 많지는 않고 제대 후에 취직하면 바빠서 주식할 시간도 없지 싶으며 절대적인 수입 자체가 많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에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 싶지만 그래도 이 주식이란 것을 경험하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주식을 포함하여 여러 재테크 수단에 대한 공부를 좀 해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