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서론
왕눈 발매 후 진행된 2개월의 신드롬이 참 흥미롭다. 특히 너 나 할 것 없이 자신의 플레이 장면을 공유하는 문화가 재밌다. 공유되는 플레이 클립의 맥락은 크게 세 가지, 하나는 조나우 기어를 이용한 전국창작마당(희망편), 다음은 설계나 컨트롤 문제로 부서지거나 날아가는 조나우 기어를 허망하게 바라보는 것으로 항상 끝이 나는 창작마당(절망편), 마지막은 수많은 데스 아티스트들의 'DUMB WAYS TO DIE'다. 올라오는 클립마다 비슷할 수는 있을지언정 100% 똑같은 그림은 나오지 않는다. 이렇게 다양한 플레이 양상이 나오는 이유는 오픈월드 게임이기도 하지만 자유도가 강점이던 전작에 이런저런 요소를 추가함으로써 유저의 창의성이 개입될 여지를 더욱 키워 놓았기 때문이다. 발매 초기의 열풍은 이런 점에서 기인한다.
자유도도 자유도지만 이 게임은 스케일이 정말 크다. 현세대 닌텐도의 역작, <슈퍼마리오 오디세이>나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는 큰 스케일로 많은 즐거움을 주었다. 하지만 매번 이런 볼륨을 뽑아내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후속작에서 다시 스케일이 줄어들어도 팬들은 여전히 만족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함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리오와 젤다 두 프랜차이즈에 비해 포켓몬 후속작은 상대적으로 허접한 스케일과 완성도를 보여 이미 팬들의 불만족을 얻고 있다. 어쨌든 그런 걱정을 깨고 닌텐도와 모노리스 소프트는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큰 스케일로 아주 보란 듯이 모두를 만족시키는 데 성공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다.
야숨과 왕눈, 두 숨결의 용사 시리즈는 탐색과 체험이 특히 중요하다. 더불어 맵이 넓은 만큼 탐색할 것들도 엄청 많다. 야숨 플레이 당시에는 이런저런 공략을 참고하여 웬만한 수집 요소는 모두 모았으나 필드 보스 메달이나 하이랄 도감, 지도 100% 정도는 건너뛰었다. 반면 왕눈에서는 이 게임에서 달성할 수 있는 요소를 모두 완성하고 싶었다. 거기서 더 나아가 모든 요소의 탐색을 온전히 스스로 하고 싶었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진행 상황을 인게임 힌트와 직접 발로 뛰는 탐색에 의지하려고 했다. 발자국 모드를 수시로 체크하며 안 둘러본 곳이 없다 싶을 정도로 돌아다녔지만 100% 달성은 결코 쉽지 않았다. 가령 코로그 씨앗은 750개 정도까지는 내 힘으로 찾겠는데 그 이상 찾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했다. 그래서 모자란 몇 가지 부분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공략을 참조했다ㅜㅜ 어쨌거나 올클리어까지는 330시간이라는 긴 시간이 걸렸지만 그만큼 나는 직접 발로 뛰며 혜자롭게 게임을 즐겼기 때문에 전혀 아쉬움이 없다.
지난번 야숨은 별 말 안 적었는데 왕눈은 100% 달성 후 졸업한 기념으로 몇 가지만 꼬집어서 이야기를 풀고 싶다.
1. 갖추어진 모험
전작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은 그 이름이 가진 느낌처럼 야생을 직접 탐험하는 경험이 참 값진 게임이다. 다채로운 자연으로 둘러싸인 광활한 대지를 누비다 보면 원시적인 몬스터들과 더불어 고대 시커족의 과학기술마저도 마치 자연 그대로의 것처럼 느끼게 한다. 반면 이번작 <티어스 오브 더 킹덤>은 보다 갖추어진 모험의 느낌이 강하다.
첫째는 게임 내적인 측면에서의 갖춰짐이다. 하이랄 대지는 여전히 광활하지만 전진 기지나 조망대뿐 아니라 조사대와 토벌대를 구성하여 점차 활동반경을 넓혀 가려는 하이랄인들의 조직력은 광활한 하이랄을 그나마 북적이게 만든다. 특히 종족 간 교류가 눈에 띄게 발전한 점이 매우 흡족스럽다. 이는 링크를 돕는 조력자들과도 일맥상통한다. 야숨 때는 100년 전 링크와 함께 싸우던 영걸들의 힘을 간접적으로 받았지만 왕눈에 들어와서는 현세대의 영웅들이 현자가 되어 링크를 직간접적으로 돕는다. 특히 최종장에 이르러 모든 현자들이 함께 전투에 참여하는 부분은 참 가슴 벅차다. 하이랄의 위기를 젤다와 링크 두 사람만이 자각하던 과거를 생각하면 하이랄의 모두가 하나 되어 이 위기에 함께 맞서는 부분은 참 감개무량하다. 또한 고대 하이랄의 왕 라울은 오른손을 통해 항상 링크와 함께 하며 모험을 돕는다. 어느샌가 나타난 조나우 문명조차 마치 먼 훗날의 링크를 위해 먼 과거로부터 예비된 것만 같다. 탐험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진 느낌도 좋지만 무엇보다 더 이상 모험이 외롭지 않다는 사실이 참 좋았다. 링크는 그 이름처럼 사람과 사람을,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존재이며 그런 존재가 맞잡은 손으로 표현되는 연출은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다.
두 번째는 게임 외적인 갖춰짐이다. 이미 전작을 경험해 보았던 플레이어들은 기본적인 게임의 디자인이나 적들의 공략법 등을 잘 알기에 게임을 좀 더 손쉽게 풀어나갈 수 있다. 물론 새로 익혀야 할 요소들이 많아졌지만 무에서 유를 쌓아가야 했던 전작과는 달리 유에서 유를 더하면 모험이 더욱 폭넓고 편리해진다. 애초에 이 게임 자체가 전작의 추가 요소를 고민하다가 살이 덧붙여져 후속작으로 나온 케이스라 이런 성격이 더욱 짙다. 전작을 즐긴 사람과 이 작품으로 입문하는 사람의 감상의 차이가 큰 점은 아마 이런 익숙함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2. 자유도
이번작의 가장 큰 특징은 스크래빌드와 울트라핸드다. 효율적인 재료가 정해져 있고 그마저도 깨지면 다시 만들어야 하는 무기 스크래빌드는 활용도에 비해 귀찮음이 크다. 반면 화살 스크래빌드는 평소에 파밍만 꾸준히 해 놓으면 상황에 맞게 재료를 붙여 원거리에서 쏘기만 하면 되니 전투에 확실한 도움이 된다. 근데 따지고 보면 사실 젤다는 이렇게 소모를 걱정하는 게임은 아니었다. 방패 정도에 내구도가 있기는 했지만 원래는 큰 던전을 클리어하며 장비를 하나씩 얻어 여기저기로 더욱 뻗어 나가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쥐고 있는 무기의 소모를 신경 써야 하는 야숨을 거쳐 왕눈은 그 무기에 달린 소재도 신경 써야만 한다. 스크래빌드는 자유도를 뒷받침하지만 그 효과의 응용은 시스템의 범위 안에 있고 뭣보다 꾸준히 재수급을 해 줘야 하기에 다소 한계가 있는 시스템이다 싶다.
사실 이 게임의 자유도는 다른 곳에 있다. 전작 야숨에서 극찬을 받던 자유도는 적당하게 사실적인 특유의 물리 엔진 그리고 시작과 끝만 정해 놓고 그 사이에서 무슨 행동을 하든 별다른 제약이 없는 너그러운 게임 디자인에 있다. 울트라핸드는 왕눈의 자유도에 있어 가장 핵심적인 요소로 재료를 활용한 설계로 용이한 이동과 공격이 목적이다. 가령 물을 건너기 위해 주위의 재료를 활용하여 다리나 배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조나우 기어를 이용해 비행기를 만들면 물과 접촉하지 않으며 건너갈 수도 있다. 심지어는 울트라핸드를 사용하지 않고 높은 지형으로 기어올라가 활공해서 건너갈 수도 있다. 목표까지 나아가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고안할 수 있으며 그런 방법에 별다른 제약을 두지 않는 점은 지난 작과 흡사하다. 이런 자유도와 창의성은 다양한 조나우 기어를 활용할 때 더욱 큰 빛을 발한다. 물론 간단한 탈것은 누구나가 생각하고 만들 수 있지만 작은 것들을 모아서 나오는 큰 움직임(예시, 4단 로켓#)은 설계가 꽤 필요하며 더 나아가 조나우 기어의 특이점을 토대로 원래의 사용 의도와 다른 용도로 활용함(예시, 서스펜션으로 이용되는 스프링#과 냄비#)은 제작자의 의도를 뛰어넘는 묘수이다. 덕분에 세상의 많은 창의력 대장 링크들은 오늘도 젤다의 기다림을 외면하며 기상천외한 탈것을 만들어 하이랄을 누빈다.
3. 하늘섬과 지저
이 게임의 몇 안 되는 단점은 1) 스위치의 낮은 기기 성능을 감안하더라도 심기를 거스를 만한 심각한 프레임 드랍, 2) 전작의 신수 시스템에 비해 퇴보된 현자 시스템, 그리고 3) 생각보다 할 게 없었던 하늘이다. 더불어 야숨에서 느껴지는 신선한 충격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점으로 꼽는 경향도 있지만 조금 억지 같고,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 게임은 전작의 많은 부분을 개선하고 더욱 많은 요소를 추가했기에 충분히 보완 가능하다 본다.
그중 가장 아쉬웠던 하늘섬을 먼저 본다. 이 게임의 캐치프레이즈는 '끝없는 모험의 무대가 하늘로 넓어진다'이다. 아오누마 에이지의 시연 또한 신비로운 시작의 하늘섬이다. 이쯤 되면 이 게임의 메인 디쉬는 하늘인 것 같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보면 하늘은 별 볼 일 없다. 대부분의 하늘섬은 모험이 가득한 필드가 아닌 하나의 던전 혹은 사당(수정 옮기기 패턴이 대부분인)일 뿐이다. 그나마 돌아다닐 구석이 있는 시작의 하늘섬은 야숨에서의 시작의 대지 같은 플레이 초반 튜토리얼 지역이라 어느 정도 진행하면 다시 돌아올 일이 잘 없다. 결국 그렇게나 목놓아 울부짖던 하늘은 메인이 아닌 가니쉬에 불과했다. 지상에서 보는 하늘이 다소 답답할 수 있기에 하늘섬을 마냥 늘릴 수는 없었다던 제작비화가 있지만 그래도 아쉽다.
반면 이 게임은 사이드 디쉬가 고봉밥이다. 존재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았던 지저는 첫 진입부터 신선하다. 지상과 거의 1:1로 대응되는 넓은 구성과 그 안을 채우고 있는 수많은 즐길거리들은 지저가 오히려 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유의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와 함께 극도로 제한된 시야, 험난한 필드로 맨몸 탐험이 어렵기 그지없다. 처음에는 이것도 모험이지 하면서 조명꽃 던지며 다니다가도 어느 순간 다 내려놓고 호버 바이크 만들어서 뿌리부터 밝히게 된다. 그럼에도 지저는 탐험할 맛이 난다. 조나우 기어 운용에 필요한 풍족한 조나니움, 다양한 전투 경험을 제공하는 투기장과 필드+던전 보스, 블루프린트 설계도를 제공하는 이가단 아지트와 비중이 늘어난 이가단 이벤트 그리고 게다가 부식되지 않은 온전한 무기들... 지저는 하늘보다 넓고 즐길 거리도 많고 그 보상 또한 풍족한 편이기에 어려운 탐험을 충분히 감내할 만하다.
하지만 여전히 불만이 남는다. 기대도 안 하고 다니기도 불편한 지저는 왜 이렇게 재밌을까? 좀 더 넓고 아름답게 펼쳐져 있길 기대한 하늘섬은 왜 재미있다가 말까? 하지만 다행히도 하늘과 지저 그리고 기존의 지상 그 모든 것을 합한 이 하이랄은 탐험할 것이 충분히 차고도 넘친다. 허전해서 아쉬움만 남는 하늘섬은 혹시 DLC를 위해 남겨놓았나 하는 생각을 했었지만 DLC는 계획이 없다는 아오누마의 최근 인터뷰를 보고 나니 그냥 쭉 아쉬움으로 남을 것 같다.
4. 기타
갖추어진 모험의 기조는 OST에서도 잘 드러나는 것 같다. 전작 <야생의 숨결>의 음악은 야생이 주는 날것 그대로의 느낌을 과하지 않게 꼭꼭 눌러 담았다. 그에 비해 왕눈의 음악은 기존의 음악 기조를 그대로 하면서도 멜로디나 악기가 더해져 다양한 환경이나 상황에 대한 묘사의 폭이 매우 넓어졌다. 앞서 말한 갖추어진 모험의 느낌을 잘 전달하는 곡들은 감시 요새(#)와 조망대(#) bgm이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여전히 과하지 않다. 야숨처럼 그냥 소소하면서도 듣기 편한 음악이 대부분이라 유튜브 등에 누군가 편집해 놓은 플레이리스트를 노동요로 잘 이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전작 야숨에서 가장 인상이 깊었던 곡은 보행형 가디언 전투음악(#)이었다. 강한 적을 상대하는 쫄깃한 긴장감이 물씬 풍긴다. 왕눈에서 그런 곡이 있었을까 생각을 해 보니 독기마 전투음악(#)이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두 몬스터는 여러모로 닮아 있다. 게임 초반의 링크가 상대하기엔 너무나도 강력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튀어나와 기괴한 포즈로 빠르게 달려온다. 강한 적을 상대하는 느낌은 동일하지만 가디언이 긴장감을 준다면 독기마는 공포감을 전달한다는 차이점이 있다. 근데 독기마 전투는 음악도 음악이거니와 연출 자체가 공포심을 더욱 자극하는 것 같다. 지금이야 자연스럽게 폭탄 화살부터 들지만 처음 상대할 땐 진짜 오줌 지릴 뻔했다. 아직도 가논보다 독기마가 더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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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스토리에서 젤다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다. 뒤에서 링크의 모험을 묵묵히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에 그쳤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는 운명을 함께 짊어진 또 하나의 주인공 역할을 톡톡히 수행해 내고 있다. 특히 재앙을 막기 위해서라면 본인의 자아마저 버린다는 구국의 결단을 아주 기꺼이 감내하는 젤다의 헌신이 참 눈물겹다. 이건 스포를 당해서 이미 알고 있던 부분이었지만 스토리라인 연출 자체가 매우 좋아 알고 봐도 마음이 찡했다. 17번째 기억 재생 후 고요한 공주를 이용한 연출은 개인적으로 꼽는 젤다 시리즈 올타임 넘버원 연출이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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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커족이 지닌 하이 테크놀로지의 집약체인 가디언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게 된 것은 아쉽다. 아군이 아닌 적을 보호할 수도 있는 위험성을 지닌 고대 병기들은 들인 기술력이 아깝더라도 폐기하는 편이 옳다고 판단했을 것 같다. 왠지 영화 <아이, 로봇>의 마지막 장면이 떠오른다. 가디언은 그렇다 쳐도 시련의 사당은 왜 흔적도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일까? 철거하는 것만 해도 꽤 큰 일이었을 것 같다. 어쨌든 고대 시커족 기술이 지닌 독특한 디자인 양식은 그나마 조망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고 가디언은 하테노 연구소에 뚜껑이라도 남아 있어 좋았다.
길고 긴 감상은 이 정도로 하고, DLC가 없는 것은 아쉽지만 완전히 새로운 시리즈인 다음작 또한 심리스 오픈월드로 이미 제작 중이라기에 기대가 크다. 야숨을 보고 든 걱정은 왕눈을 보고 사라졌으니 앞으로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접어 둘 것이다. 수개월간 참 재밌게 플레이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