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이란 분은 본인의 생각이 담긴 글을 참 읽기 쉽게 쓰는 재주가 있는 분이다. 지금의 이런 인식과는 달리 예전엔 별 관심 없던 분이었다. 대중의 인식과 비슷하게 이런저런 사회 문제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까칠하고 직설적으로 표현하던 이미지만 어렴풋하게 남아 있을 뿐, 그가 쓴 글은 한 번 정독해본 적도 없다. 다만 그는 최근 젊은 나이에 림프종이라는 큰 병을 얻었고, 말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고 가까스로 회복되었다. 특이한 점은 투병 이후의 행보가 각종 커뮤니티를 통해 조금씩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대부분 투병 후의 그는 다른 사람인 것 같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확실히 요즘의 그의 글에선 예전의 그 까칠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매우 차분하고, 담담하고, 조용한 어조 속에 묵직함 울림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그런 허지웅의 글을 좋아하기 시작한 시기였던 것도 있고, 특히 이 책의 제목 <살고 싶다는 농담>은 투병생활을 적극적으로 담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바꾸어 놓았을까? 나는 그것이 참을 수 없이 궁금했다. 처음엔 많은 말을 써 놓았지만 거두절미하고 이 책은 고난을 당한 자신과 당하고 있는, 혹은 앞으로 당할 많은 청년들을 걱정하는 저자가 담담하고 조심스레 건네는 글이다.
로마서는 신약성경의 서신서 중 가장 처음에 위치하고 있는 책이다. 알려진 대략적인 연대에 의하면 야고보서-AD 45년-가 가장 먼저 쓰였고, 로마서는 AD 57년으로 옥중 서신서-AD 62년-를 제외하면 가장 마지막에 쓰였다. 그런 와중에 가장 먼저 위치해 있다는 것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다. 그 중요성을 알아 올해 성경 일독은 로마서부터 시작을 했는데 최근 읽었던 구절 중 하나가 이 책을 읽는 동안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롬 5:3-4)"
사람이 변한 것 같다는 세간의 평가를 그는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그는 정말 변했다. 그는 이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을 통해 최근 자신의 삶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 즉 사회 문제에 대해 화두를 던지거나 남을 평가하며 그것을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바꾸려는 일을 그만두고 본인이 할 수 있는 작은 일, 가령 가난한 청년들이 자기처럼 힘든 20대를 보내지 않기 위한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한다. 림프종은 그에게 그 두 가지를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었나 보다. 그가 소망하는 바를, 그 힘든 시간을 통해 이루어 내었길. 또한 앞으로 이루어 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더불어 나에게도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별하는 지혜가 생기기를 바란다.
+ 더불어 이런 좋은 신간을 제공해 준 진중문고에게 감사드립니다... 요즘 읽는 책은 대부분 부대에서 빌려 보는데 좋은 책이 은근히 많다.
++ 한 번 올렸다가 글이 너무 필요이상으로 과해서 내리고 반이나 덜어내서 다시 올림. 사실 날짜 갱신을 안 하려고 했는데 뭘 하다 꼬여가지고 발행일자가 갱신이 되었음. 그래서 원래 언제 읽고 언제 처음 글을 썼는지 잘 모르겠다. 아마 작년 극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최근 신간이 나왔는데 읽을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