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Northern Kyushu - 먹부림 이야기(#)에서 계속.
이 식당은 우리 부부 모두 이견 없이 입을 모아 선정한 이번 여행의 베스트 픽. 일정이 굉장히 빡셌던 이번 여행의 고단함을 녹이고 씻어주는 훌륭한 마지막 한 끼였다. 나는 원래 후쿠오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 돈카츠 와카바를 갈까 하고 생각했으나 와이프가 이래저래 찾아보고는 추천함. 그래서 나도 찾아봤더니 평들이 하나같이 모두 좋았다. 이곳은 후쿠오카시의 중심지라 여겨지는 텐진-하카타역에서 다소 떨어진 곳이다 보니 일부러 찾아와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었지만 이곳을 먼저 방문한 사람들의 평을 믿어보기로 했다.
구글맵이 길을 이상하게 가르쳐줘서 골목으로 좀 돌아갔는데 사실 큰 길에서 그냥 쭉 가로질러 가면 됨. 일반 주택단지 안에 가정집처럼 살포시 자리 잡고 있다. 주위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소음에 주의해 달라는 안내문이 있다고 하더라. 이곳은 점심과 저녁 장사를 하는데 고기 중량과 그에 따른 가격만 차이 있는 것 같고 메뉴는 동일한 듯. 점심은 웨이팅이 다소 많은 편이고 저녁식사는 웨이팅 없이 먹었다는 정보를 얻어서 저녁에 갔다. 덕분에 8인 만석에 6인만 차 있어서 웨이팅 없이 입장할 수 있었다. 4명은 현지인, 2명은 우리처럼 한국에서 온 커플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나갈 때까지 가게를 드나들었던 한국인은 이전에 있었던 커플과 우리 총 4명뿐이었다. 위치가 위치이다 보니 관광객은 잘 오지 않는 찐 현지인 맛집인가보다 싶었다.
가게 지침상 내부는 찍을 수 없었지만 대충 묘사를 하자면 6+2인의 ㄱ자 바 테이블에 테이블 조명은 은은한 전구색(주황색), 바로 앞에 있는 주방 조명은 회백색이라 식당의 느낌이 아니라 무슨 가정집에 초대받아서 밥 먹는 느낌이었음. 은은하게 틀어놓은 피아노 음악이 살짝 무색해졌다. 요리 과정을 전부 확인할 수 있어서 눈이 즐거웠다. 튀김솥을 황동색, 검은색 두 가지를 사용했는데 황동색에 로스카츠를, 검은색에 에비후라이를 튀기는 걸 봤는데 히레카츠를 어디에 튀겼는지를 잘 모르겠다. 아마 로스카츠와 같은 곳에 튀기지 않았을까? 그리고 여러 리뷰를 통해 알려진 것처럼 고기를 튀길 때는 정말 별다른 행동을 하지 않고 주의 깊게 기다리는 편이고 다른 반찬 등을 조금씩 준비하기는 하지만 그마저도 타이머가 울리면 곧바로 그만두고 고기에 열을 올리는 편이다. 부부 두 명이서 운영하는 듯한데 리뷰만 보았을 때는 관광객을 꺼리는 굉장히 날카로운 인상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푸근한 이미지였다. 보통 이건 내가 메뉴 주문할 때 느껴지는데 손님 안 가리고 잘 받는 집은 관광객이 하는 어눌한 주문도 경청하려는 자세가 뿜어져 나온다. 요즘 후쿠오카에 혐한하는 가게가 종종 있다고 해서 이래저래 걱정도 많이 하고 실제로 가게 방문할 때도 예전보다는 좀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다행히도 이번 여행에서 혐한 가게는 하나도 접하지 못한 것 같다.
주문한 메뉴는 에비후라이+상 히레카츠 정식과 특상 흑돼지 로스카츠 정식. 로스카츠와 히레카츠 위주의 메뉴를 구성한 곳이고, 에비후라이를 사이드로 마련해 놓은 곳이라 세 가지 종류의 튀김을 모두 맛보고 싶었다. 로스와 히레에는 상 등급과 특상 등급이 따로 있고 가급적 모두 특상 등급을 주문하고 싶었으나 특상 히레카츠 정식은 250g이고 여기다가 사이드로 에비후라이를 주문하면 양이 너무 많을 것 같아서 히레카츠는 상 등급에 에비후라이가 포함된 메뉴로, 로스카츠는 특상으로 주문했다.
긴 기다림 끝에 받은 음식. 주문으로부터 10분정도 걸린 것 같다. 나는 로스, 와이프는 히레를 받아먹었다. 로스카츠를 처음 한 입 베어무는데 와... 나는 이걸 먹기 위해 후쿠오카로 왔나 보다 싶었다. 로스에는 지방이 많이 껴 있기는 하지만 느끼한 느낌은 아니었고 오히려 더욱 고소한 느낌.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돈카츠가 너무 부드러웠다. 여느 돈카츠 집처럼 소금과 와사비, 돈카츠 소스를 곁들여 먹을 수 있는데 모두 다 무난히 잘 어울리는 느낌이다. 다만 이 집 한정으로는 돈카츠 소스에 찍어 먹는 것이 가장 기억에 오래 남는 것 같다. 맛을 음미하느라 시간을 오래 두고 먹으니 고기가 조금 식어서 식감이 덜 부드러워지는 듯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동안 부드러움을 유지하는 편이다.
로스의 부드러움은 말 할 것도 없지만 히레도 생각보다 퍽퍽하지 않고 상당히 부드러웠다. 하지만 둘을 비교하자면 히레보다는 로스가 더 맛있었음. 와이프가 히레 쪽을 더 맛있어했던 것을 보면 이것은 나의 취향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홍새우를 사용한 것 같은 에비후라이는 속이 꽉 찬 편이다. 특히 와이프가 에비후라이와 함께 나오는 타르타르소스를 엄청 마음에 들어 했는데 시판 타르타르소스의 익숙한 맛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오묘한 느낌이다. 아마 계란 흰자를 잘게 채 썰어 넣은 것으로 보이는데 이것이 색다른 식감을 주었던 것 같다.
가게 운영방식 때문에 말이 많은 편이긴 하다. 아무래도 이 집은 회전률에 신경 쓰지 않는다. 보통 웨이팅이 많이 걸리는 집은 대기 중에 미리 주문을 받아 수요조사를 먼저 실시하고, 주방에서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 기다림이 길어도 앉기만 하면 늦지 않게 음식을 받을 수 있는데 비해 이곳은 자리도 협소하고, 주문도 미리 받는 것이 아니라 착석 후에 주문을 받고, 조리시간도 다소 긴 편이다. 하지만 난 이런 생각이 든다. 이러한 방식이 음식의 맛과 컨디션을 최고로 유지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이 방식을 그대로 밀고 나가야 한다. 손님에 대한 미안함에, 장사에 대한 욕심에 시스템을 바꾸면 맛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기에 이런 곳에서의 불편함은 훌륭한 맛을 찾고자 하는 주인과 손님이 모두 감내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나는 이 집이 이대로 계속 지속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훗날 다시 후쿠오카를 찾았을 때 내가 받은 그 느낌을 다시 고스란히 받고 싶다.
내가 식견이 좁아 일본의 돈카츠집을 많이 다니지는 못하였으나 여태까지 내가 먹어본 돈카츠 중에는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다만 이곳의 돈가츠를 접하고 나니 내가 한동안 한국의 짬뽕을 눈에 불을 켜고 쫓아다닌 것처럼 국내외를 막론하고 높은 평가를 받는 돈카츠들을 하나하나 쫓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