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부터 이런 계획을 함. 1년 동안 와이프랑 찍었던 사진과 영상을 스크랩해서 우리 가족의 1년 결산 브이로그를 매년 만들어야겠다. 영상 작업을 하고 싶고, 작업에 적절할만한 소재에 대해 생각하니 매년 결산 브이로그를 만들어 놓으면 시간이 지나 다시 꺼내서 추억하기 좋겠다 싶었다. 계획은 9월부터 하다가 10월 초부터 본격적으로 구상을 시작하고, 컨셉이나 콘티를 짜는데 시간이 꽤 걸려서 실제 제작은 10월 말부터 시작해서 꼬박 한 달 이상 걸렸다.
1. 타이틀
Annual Closing Video의 메인 타이틀을 뭘로 할까 고민했다. 원래는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두고 씨름하는 편인데 이번엔 별다른 가안 없이 거의 바로 생각나서 결정한 것이 'THE MOMENTS'임. 한 해 동안 있었던 많은 순간들을 한데 모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였다. 막상 제목을 붙이고 나서 옳은 표현이 맞나 하면서 검색을 좀 해 보니 동명의 음악 그룹(#)도 있고, 동명의 곡(#)도 있었다. 이러니 뭔가 오리지널리티가 떨어지는 느낌이지만 내가 뭘 대단한 걸 만드는 것도 아니고 뭐 어때 하면서 그대로 밀고 나갔다. 뒤에 '/2022'를 붙인 것은 연도별로 만들겠다는 나의 큰 의지였는데 후술 할 몇 가지 이유로 이후 시리즈를 이어나갈지 말지를 고민 중이다. 숫자 앞에 슬래시를 붙인 것과 띄어 쓰지 않은 것은 모두 큰 의미가 없음. 그래서 차후에 시리즈를 만들게 되면 표기는 변경될 여지가 충분하다.
2. 배경음악+구성
전체적인 컨셉을 정하기 전 bgm 선정부터 했다. 나는 수익은 일절 상관이 없으니 저작권 생각 없이 그냥 쓰고 싶은 곡을 가져다 썼다. 이번에 염두에 두었던 bgm 풀은 과거와 현대 곡들을 모두 아우르는 리듬게임 곡들이었지만 보다 잊혀가는 과거 곡들 중 하나를 쓰고 싶었다. 그래서 오랜만에 EZ2DJ 1st~3rd 곡들도 몰아 듣고, CD 진열장에 있던 HIGH5 OST도 다시 꺼내서 들어 보았다. 확실히 잊혀진 구곡 중에 좋은 게 많아. 예전 곡들을 이리저리 들어보다가 곡보다도 더욱 잊혀진 작품인 비트크래프트 사이클론이 많이 생각났다. 구린 게임 디자인에 비해 수록곡은 하나같이 좋았다는 그 사이클론. 그중에서도 Cranky의 'GIVE and TAKE'(#)를 bgm으로 꼽았다. 나는 하우스가 좋아요.
원래 사이클론 OST에 실린 게임 버전 곡의 플레이타임은 2분 15초지만 이후 2019년에 발매된 음반에 실린 풀버전의 플레이타임은 4분 31초이다. 처음에는 영상을 길게 만들 생각이 없어 게임버전의 곡을 요리조리 늘려 쓸까 하다가 풀버전을 줄이는 편이 더 낫다고 판단해 이를 3분 후반대로 커팅을 했었다. 하지만 전체적인 구성을 고안하던 중 전체 영상에 들어갈 사진이나 동영상이 너무 많아서 4분 이내로 재생시간을 잡기가 어렵더라. 그래서 계획을 바꿔 그냥 원곡을 수정 없이 그대로 갖다 썼다. 영상의 구성은 주로 놀러갔던 여행지와 스튜디오 웨딩 촬영, 결혼식 영상을 각 사건별로 묶어 시간별로 나열했음. 시간 부족으로 넣지 못한 여행지(경주)나 사건(프로포즈, 답프로포즈 등)이 있었지만 그냥 과감히 포기하기로 했다. 도저히 넣을 자리가 없었다. 제주 신혼여행 파트는 자료가 정말 많았지만 시간상 넣지 못한 것, 그리고 세부 여행 파트는 자료가 없어 억지로 소스를 가져다가 끼워 맞춘 느낌이 있어서 조금 아쉽다.
3. 컨셉과 참고한 작업물들
뭐든지 처음 디자인 컨셉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 갈피를 못 잡는 단계에서 메인이 되는 레퍼런스를 하나 두면 전체적인 독창성을 잃기는 하지만 어쨌든 편하다. 나는 작업을 빨리 시작하고 마무리하고 싶어서 그냥 메인 레퍼런스를 찾았다. 처음에는 비핸스에서 찾을까 했는데 꿈높현시가 될 것 같아서 금방 그만두었다. 대신 MotionArray라는 템플릿 사이트를 찾아 정말 많이 둘러보았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것은 이(1) 두(2) 영상임. 전자는 티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인트로 파트에다가 거의 그대로 가져다 썼고 영상 타이틀 폰트에도 영향을 주었다. 후자는 일부 화면 구성 등에 참고하였음. 색은 세 가지(#5033FF, #EDEDED, #0A0A0A) 위주로 작업했는데 #5033FF는 왜 저런 애매한 파란색을 썼는지는 나도 잘 알 수 없다. 그냥 포토샵으로 콘티 만들 때 눈에 잘 띄는 쩡한 색을 썼었는데 그걸 그냥 본 작업까지 가져간 듯. #EDEDED는 #FFFFFF보다는 좀 덜 흰색을 쓰고 싶어서 대충 골라 썼는데 결과물을 보니 그냥 회색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좀 더 밝은 색을 쓸걸...
여기엔 작업물을 모두 공개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작업기도 간단히 정리해 봄. 처음에는 사진 슬라이드+동영상의 조합을 쓰려고 하다가, 작업하는 도중 점점 사진 슬라이드의 비중이 줄어들고 영상의 비중이 늘어났다. 더불어 후반으로 갈수록 모션 등의 효과도 점점 줄어들고 단순 화면전환 위주로만 구성되었다. 그 이유는 1) 작업하는 도중 컨셉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진과 동영상을 적절히 조합하려고 했으나 동영상이 별로 없는 초반부의 사건들과는 달리 후반부의 사건들은 영상 소스가 너무나도 넘쳐났다. 사진은 모션 없이 그냥 띄우면 너무나도 심심해 보인다. 그래서 이래저래 화면분할도 해주고 모션도 주었던 것인데 그런 것들을 동영상에도 적용하면 너무나도 과한 느낌? 그래서 후반부는 별 효과 없이 동영상만 나열했다. 그리고 2) 후반부에 들어서 작업의 강도를 낮추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처음에는 유튜브에 전체공개를 염두에 두고 작업 중이었다. 하지만 와이프 신분 상 전체공개에는 어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 어쩔 수 없이 일부공개로 전환해야 했다. 사실 내수용과 외수용은 작업 텐션도 결과물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이유에서 에너지를 아끼고자 후반부에는 슬라이드쇼 없는 동영상 나열 위주의 화면 구성으로만 나갔음.
4. 인포메이션
주로 여행지 위주의 구성이다 보니 여행 브이로그의 컨셉을 살리면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어딜 어떻게 놀러 갔는지 정보를 담고 싶더랬다. 간략하게 텍스트로 어느 시기에 있었던 일인지, 어느 지역의 어느 장소인지를 텍스트로 남겼음. 결혼 관련해서는 웨딩 촬영이나 결혼식 장소를 기입해 놓았다. 텍스트 상자는 텍스트의 길이에 맞게 자동으로 길이가 조절되는 함수를 어디서 긁어다가 썼는데 이게 바뀌는 텍스트에 맞게 알아서 조정될 때가 있고 아닐 때가 있어서 일일이 맞춘다고 고생 좀 했다. 내가 적용을 잘못한 탓인지... 그래도 만들고 나니 과하지 않은 선에서 정보전달의 목적은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아 만족임. 다음에도 만들 일 있으면 이런 타이포그래피는 쉽게 쉽게 가야겠다.
사건 구분을 위해 삽입한 타이포 위주의 아이캐치와 쿠키영상 등의 트리비아도 있으나 넘어갑시다. 아래는 디자인 외적인 후기.
5. 메모리
총 재생시간이 5분 남짓한 영상이지만 안에 들어간 소스가 꽤 많았다. 내 기준으로는 그간 작업 중 최다 소스다. 특히 들어간 동영상 소스만 100개가 넘어가다 보니 작업 후반에는 메모리가 모자라서 프로젝트를 로딩할 때, 렌더링 할 때 컴퓨터가 버티지 못하는 때가 많았다. 특히 렌더링 때가 문제였다. 로딩은 그냥 기다리면 되니깐 괜찮은데 에펙에서 작업하고 렌더링 하려고 어도비 미디어 인코더로 프로젝트 파일을 띄워도 렌더링 대기열에 뜨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정말 문제는 실컷 다 띄워서 렌더링을 해도 첨부한 동영상을 참조할 수가 없어 미싱 파일 에러처럼 그냥 빈 화면으로 나오는 것이다. 작업 중에는 분명 첨부한 동영상이 잘 뜨고 원본 소스도 설정된 디렉토리에 그대로 있다. 하지만 렌더링 때만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 원인은 잘 모르겠지만 나는 분명 메모리 문제라 확신한다... 그러고 보니 2017년 조립했던 컴퓨터라 라이젠5에 GTX1050, 8기가 메모리로 지금까지 버티고 있었다. 만 5년이 넘은지라 새로 조립할 때도 되었지만 당장 자금 여유가 없기도 하고, PC로 게임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당장은 딱히 새로 맞출 생각이 없다. 그리고 그래픽 작업에는 그래픽카드가 아니라 빵빵한 메모리가 더욱 중요하다는 글을 최근에 읽은지라... 그래서 정 필요하다면 램만 좀 더 추가할까 싶기도 하지만 어쨌든 아직은 여기서 무슨 액션을 취할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PC를 떠나 랩톱 위주의 생활을 할까도 고민하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5-1. 생태계 전환?
지금 쓰는 랩톱이 2019년형 맥북 프로다. 당시 작고 성능이 단단한 랩톱이 갑자기 필요해 13인치 기본 사양에서 용량만 조금 넓혀서 구매를 했다. 구매 1년 후에 M1 맥북 프로가 나와서 아주 쪼끔 씁쓸하긴 했지만 그래도 큰 아쉬움 없이 3년 이상 잘 쓰고 있다. 맥북을 구매한 이유는 영상작업을 염두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윈도우 환경에서 사양 때문에 헤매는 에펙 작업을 맥북에서 파이널컷으로 가져와 작업하면 보다 쾌적하리라고 확신한다. 물론 에펙과 파이널컷의 작업범위는 다르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 내가 하는 작업 수준을 고려하면 프리미어나 파이널컷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파이널컷 구매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냥 윈도우에서 하던 대로 해도 아직은 아쉬울 게 없었기 때문에... 그러나 이 랩톱의 본래 존재 의의를 살려야 될 때가 올지도 모르겠다. 이 이야기를 와이프에게 했더니 아이맥 이야기를 하던데 아니요... 그건 호들갑입니다.
6. 내수용과 외수용
많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고, 2022년 결산에서도, 이 포스트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많은 고민 중인 부분이다. 사실 나도 내 얼굴이 담긴 영상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는 것이 100% 탐탁지만은 않다. 프로포즈 영상, 그리고 그걸 조금 수정한 1주년 기념 영상을 유튜브에 일부 공개로만 남겨 놓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시대에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고, 유튜브도 그 여러가지 수단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모습을 유튜브에 공개한다는 것은 시대상에 비추어 보면 그다지 이상할 것 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교사인 와이프의 경우는 다르다. 사생활 노출을 꺼려 투폰도 마다하지 않는 요즘 세상에서 불특정 다수로의 신분 노출은 어렵게 여겨질 수 있다. 그런 와중에 열심히 브이로그 찍어 올리는 교사들을 보면 한 가지 직종에도 여러 가지 모습이 혼재해 혼란스럽지만 이 역시 시대의 흐름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 이 부분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나는 사실 자기 PR의 목적이 아닌 이런저런 디자인 작업과정 자체를 즐거워하고, 그 작업 인한 작업물의 공유를 위해 공개를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안에 들어간 컨텐츠가 문제이다. 와이프를 고려하면 신분이 노출되는 브이로그의 공개가 어렵다. 그렇다고 내수용으로만 영상을 만들기도 어렵다. 앞서 말했듯 내수용만으로는 작업 텐션과 결과물의 정도가 달라진다. 가성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럼 선택을 해야 한다. 작업을 계속할 것인가?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이긴 하다. 전역 후에 느긋하게 영상이나 만들 시간이 없을 가능성이 있어서 작업 자체가 불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여건상 작업이 가능하다면 이런 문제점을 안고 갈등을 감내해 가며 영상을 만들 것인가? 더불어 작업을 한다면 어떻게 만들 것인가? 공개 여부를 타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 중인 것은 기존과 같은 스타일과 구성으로 만들기는 하되, 얼굴이 그대로 노출되는 원본은 내수용으로 두고 / 얼굴을 미모지(memoji) 등으로 가린 외수용 영상을 하나 더 만들어 각각 일부 공개 / 전체 공개로 두는 것이다. 근데 얼굴에 미모지를 적용하는 플러그인 등이 있는지 알아봤는데 다들 따로 미모지를 따로 아이폰 내 녹화 기능으로 찍어서 파일로 남기고-그걸 어째어째 불러와서 원래 영상 위에 씌우더라. 이러면 작업할 거리가 더욱 늘어난다. 아아아... 이런 많은 것들이 맞물려서 작업 자체가 가능한지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이번 영상 말미에 Maybe...^^라고 쓴 것이 복선이 되는 것일까? 한 가지 확실한 건 난 촬영과 편집을 앞으로도 쭉 취미로 길게 가져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