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처음 볼 때는 이 시리즈가 이 정도로 화제가 될 줄 몰랐음. 기껏해야 얼마 전 릴리즈한 D.P. 정도의 화젯거리로만 소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어느덧 사람들은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현실 또는 메타버스를 통해 즐기고 있고, 달고나 세트의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고 있고, 각종 인터렉티브 테마파크는 장소를 불문하고 판데믹임을 잊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이 시리즈는 이미 파괴적은 파급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시리즈는 전반적으로 볼 것도 많고, 적당한 흐름으로 잘 즐길 수 있는 좋은 시리즈이다. 조금 세분화하자면 현실의 사회 문제(빈부격차)를/비현실적인 것과 접목시키며(Squid Game)/그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짜임새가 비교적 괜찮을 뿐더러/미술적인 감각이 뛰어나고/외국인들의 흥미를 당기는 지극히 한국적인 요소가 잘 녹아 있고/매력적인 캐릭터들이 각자의 비중을 잘 살려 적재적소에서 잘 등장하고/일부 등장인물들(가령 VIP들)의 대사나 연기에는 문제가 있지만, 주요 인물들의 연기가 훌륭하여 각자의 서사를 극대화시킨다. 정말이지 팔방미인인 작품이다.
1-1.
특히 이런 류의 작품들이 하나같이 보여주는 흐름은 거대한 세력이 등장인물들을 강제로 위험에 처하게 만들어 결국엔 삶을 위해 몸부림을 찰 수밖에 없게 하는 처절한 그림이다. 반면 이 시리즈는 게임에 참가하는 등장인물들에게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수차례의 기회를 주는 것이 가장 큰 차별점이다. 선택에 대한 결과는 본인이 져야 하지만 그 선택의 바탕에는 절망적인 현실의 상황과, 앞으로 잘 되고 싶다는 한줄기 희망,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본인의 손으로 만들어 나가겠다는 의지가 모두 담겨 있다.
1-2.
잘 만들어진 시리즈는 많지만 특히 이 시리즈가 우리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크게 3가지라고 보는데, 심각한 상황 가운데 섞여 나오는 해학(특히 오일남)이나 미술적인 부분(세트, 츄리닝, 진행 요원 등), 한국적인 요소들이 사람들의 인상에 강하게 뿌리내려 현재의 신드롬에 이르는 원동력이라 볼 수 있다. 특히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국내와 해외가 주목하는 부분이 조금은 다른 것 같다. 국내에서는 해학을 위시한 밈, 시리즈의 배경과 주요 떡밥 등에 주목하는 모습이다. 사실 초반 국내 여론은 해외의 여러 작품들을 오마쥬하다 못해 비슷한 맛이 나고, 독창적인 것이 부족하며, 적당하지만 뭔가 모르게 아쉽다는 평이 많았다. 하지만 시리즈 자체가 워낙 훌륭한 편인데다 해외의 인기가 역수입되어 역주행을 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다. 반면 해외에서는 한국적인 것을 포함한 미술적인 것에 좀 더 집중하는 듯한 느낌인데 이는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것에 열광하는 사람들의 반응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달고나라는 아이템은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고 본다.
이래저래 좋은 흐름이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에 부족한 부분은 다듬고 좋은 부분을 잘 살려 시리즈를 이어 나가면 이 시리즈 또한 클래식의 반열에 들 수 있을 것이라 장담한다. 아직 풀지 않은 떡밥도 매우 많기 때문에 앞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갈 여지는 충분하다. 다만 지금까지가 이루어놓은 것이 아니라 앞으로가 중요하다. 뇌절 하지 말고 잘 만들어 나갑시다.
2.
2-1. VIP들이 옥에 티라는 의견이 많은데 나는 조금 다른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멍청한 대화나 나누고 있는 사람들이 이 모든 것들의 뒤에서 자금을 대고 게임을 관음하며 즐기고 있다는 촌극임을 보여주는 연출? 이는 일남과 기훈이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에서도 어느정도 엿보이는데, 결국 이 사람들이 이러한 게임을 벌이는 이유도 큰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단순히 재미를 위한 것이다. 그런 가벼운 동기를 가진 사람들은 대화 등도 어설프거나 가벼울 수도 있다는 생각? 하지만 감독의 치밀함이 여기까지 미치지는 않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VIPS 역할을 맡은 배우들이 너무 연기를 못해서 많은 사람들이 삼진 에바를 외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2-2. 설정 등에 대한 서술이 부족함을 문제삼는 사람들도 많던데 아마 다음 시즌을 염두에 둔 것 때문은 아니었을지? 돈의 개념으로 설명하기엔 다소 부족한, 군대 수준의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가장 의문인데 이것은 2시즌이든 0시즌이든 해서 조금씩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수년간 준비한 끝에 가까스로 빚은 작품의 후속작을 지금 이 열기가 가시고 많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오징어게임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혀지기 전까지 단시간 안에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할까? 물 들어왔을 때 노 저으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의 바람만큼 그렇게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2-3. 이런 장르 치고는 참가자들이 죽는 방법이 극도로 한정적이라 보는 맛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었다. 게임 초반에는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이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지만 어느새부턴가(아마 줄다리기 즈음부터였지 싶음) 죽는 장면은 추락만 하거나 총을 맞아 죽는 것이 대략적으로만 표현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과연 이 시리즈가 어떻게 사람이 죽는지가 중요할까? 참가자의 죽음이 초반에 잘 묘사가 되었던 것은 참가자뿐만 아니라 그걸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이 게임이 얼마나 심각한지, 그리고 얼마나 정신 나간 게임인지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기 위함이지 사람들의 죽음을 보고 즐기라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짐작컨대 아마 감독도 이정도 선을 원했을 것이다. 더불어 참가자의 죽음은 게임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더욱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구실을 마련해 주는 장치일 뿐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건의 전개와 각 인물의 서사 그리고 작품의 배경쪽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그런 유희를 원하는 사람들은 유리창 너머에서 가면 쓰고 이 모든 것을 관음하는 멍청한 VIP들이랑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도 드네...
3.
3-1. 프론트맨의 대사만 듣고 이병헌임을 알아챈 분들은 좀 대단하다 싶었음. 알고 보니 이병헌 목소리네, 영어발음이 이병헌이네 싶었지만 초반엔 대역이 연기하고 목소리는 더빙되어 후처리까지 되었던지라 딱 듣고 바로 알아내긴 좀 힘들다 싶긴 했었는데... 눈썰미들이 부럽습니다.
3-2. 무엇보다도 추석 연휴를 이용하여 나오자마자 먼저 정주행하고 끝냈던 것이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이것은 엄청난 밈을 양산하여 내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스포일러 스노우볼이 굴러가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도 없고, 피하지 못하더라도 이런 밈들을 100% 즐기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올해 잘 한 여러가지 일 중 하나임.